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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Feb 23. 2021

차기작

하나도 무섭지 않은 죽음


  다음번에 세상에 나올 책에는 꼭 보다 어둡고 절망적인 글들을 꾹꾹 눌러 담아야지. 나는 본디 낮고 끈적한 구렁텅이를 네발로 기어 다니기를 좋아하니까. 사랑이나 위로, 희망 따위는 매일 밤 달빛의 영향이 가장 적은 곳에다 까맣게 버리곤 했었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낭만이다 뭐다 하는 연홍색 삶을 살며 양껏 푸르리라 짐작하겠지만, 사실은 저 멀리서 사랑이란 것이 나를 향해 자세하게 뛰어오면 이 몸뚱어리 하나 숨기고자 허둥지둥하기 일쑤인 게 나라는 사람이니까.  한데 쓰는 족족 사랑 하나에 미쳐 사는 사람인 양 간질거리는 글이 버젓이 완성되는 건 왜일까. 누군가 내게 그간의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몰두했던 감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당장 영원 따위 없는 사랑에 대한 증오라 내뱉으란 말이야.’하고 생각하다가도 불쑥 “당연히 처절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죠.”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낭만과 사랑을 영영 좇을 모양인가 보다. 가장 어두운 곳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로 사는 명연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나 몰라라 하는 뒤틀린 심정으로 사랑만 사랑만 죽어라 쓸 생각인가 보다.  그렇다면 평생을 사랑만 하다 죽어도 좋겠다. 깨끗한 사랑, 더러운 사랑 할 것 없이 무작정 사랑에 휩쓸리고 싶다. 나처럼 사랑만 하다 죽어도 좋다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둘이서만 아는 공간에 완벽히 갇혀 진종일 사랑만 하다 후대에 백골이 되어 발견되어도 좋으니. 우리의 썩어버린 뼈를 보고서 그들은 ‘지독했던 한 쌍의 연인’이라 불러줄까. 그만큼의 우둔한 사랑을 하고 싶다. 속된 말로 미친 연놈처럼 사랑만 먹고, 사랑만 입고, 사랑만 덮은 채로 잠들고 싶다고. 온통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에 철저히 버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은 내가 교리처럼 따르는 이 사랑을 과연 용서해줄까. 이 초췌하기 짝이 없는 몰골로 믿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 말하는 나를 한심하다 여기지는 않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나는 사랑이 하고 싶다. 이 와중에도 내 허벅지의 살갗을 잡아 뜯어 사랑이란 단어를 깊숙이 새기고만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믿는 사랑을 당신들 모두에게도 납득시키고 싶다. 몹시 간절하게.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내가 죽게 된다면 그건 참 예쁘고 고요한 끝맺음일 텐데. 하나도 무섭지 않은 죽음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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