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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탠저린 Jun 13. 2022

기묘한 식당의 비밀

#06  리마, 페루



1  24/7 활기찬 페루의 수도, 리마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새벽에도 영업하는 곳이 많다



30시간에 걸친 비행이 끝나는 시점이다. 마침내 미라플로레스 근처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다. 확실히 대도시여서 그런지 늦은 시각인데도 거리만큼이나 호스텔 안도 북적거린다. 2층 침대 4개가 놓인 8인실은 여느 호스텔과 다름없었지만, 각국에서 모인 여행자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여기저기에 공용 공간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주말에는 파티도 연다고 하는데, 토요일에 떠나야 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매체에도 꽤 소개되었던 와카치나 사막이 있다는 이카로 이동하기 위해 4시간 정도의 쪽잠을 잔 뒤 아침 일찍부터 버스터미널(Cruz del Sur)로 왔다. 날을 잘못 골랐던 걸까. 모든 티켓이 Sold out이다. 돌아서려는데 같은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보인다. 다른 방도가 있을지 잠시 대화에 끼어 보았으나, 결국 오늘 이카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일정이 사라진 우리는 함께 리마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었다는 구시가지 마요르 광장에 들어서자 스페인의 지배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대성당과 화려한 궁전이 가장 먼저 보였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을 보고 있자니 스페인 남부의 한 도시 같기도 하고, 불어오는 습한 바람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해안가 가까이에 위치한 세부나 코타키나발루 같은 동남아 도시 느낌도 난다.




언제나 사람이 붐비는 리마 구시가지 마요르 광장




2  기묘함 속에서의 첫 식사



레스토랑이 모여있던 거리를 이미 지나 버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배고픔을 느꼈을 무렵, 도로변 넓은 공터에서 몰큰몰큰 풍겨오는 음식 냄새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게 이름도 없이 천막 아래 테이블 몇 개만 있는 게 식당이라 하기에는 이상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식당일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꽤 많이 걸었던 터라 지쳤던 우리는 딱히 맛집을 찾을 여력도 없이 만장일치로 그곳에 들어섰다. 그러자 식당의 맨 안쪽에서 약간 무뚝뚝해 보이지만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지는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식사가 가능한지 묻자 아주머니는 네 손가락을 피며 4명이 먹을 거냐고 물어본다. 우리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주머니는 다시 중앙의 통로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그리고 잠시 뒤, 메뉴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식을 들고 나오는 건 아까 봤던 아주머니가 아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익숙한 듯 투박하게 담긴 샐러드를 들고 나온다. 이윽고 소년은 다시 연노랑색의 소스가 뿌려진 감자 요리를 가지고 왔다. 샐러드는 모양과 다르게 신선했고, 감자 요리는 계란과 땅콩 소스가 섞여 달짝지근하고 고소했다. 두 세입 정도 먹었을까, 이번에는 푸짐한 인상의 아저씨가 큰 접시를 꽉 채운 콩과 고기가 올려진 수북한 밥을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또, 계속해서 음식이 나왔다.


이 정도면 식사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서로의 여행 일정과 계기, 다른 손님은 전혀 없는 이 식당의 묘함에 대해 무아지경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일까? 이곳은 정말 식당이 맞을까?


그때, 저 멀리서 원피스를 입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쫄랑쫄랑 다가오더니 빨간 푸딩을 수줍게 나눠주었다. 보기에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 음식들이었지만 감칠맛이 입안을 감돌았고 이들에게서 묘하게 정겨움이 느껴졌다.



무엇이 중요할까.

맛있게 잘 먹고, 살아있으면 그만이다.



숙소로 돌아와 가이드북을 보며 알게 되었지만, 이 모든 요리는 페루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이었다. 감자 요리는 파파 알 라 우얀카이나(papa a la huancaína)라고 하는데, 고산지대의 주 식량이었던 감자(papa)를 이용한 요리로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자주 먹는 식전 음식이다. 붉은색 푸딩은 마사모라 모라다(Mazamorra morada)라는 리마를 대표하는 디저트로 보라색 옥수수, 계피, 정향과 다진 과일이 들어간다. 원래는 보라색이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붉은색을 띠고 있다.






얼마 전 초등학교를 다닐 때 살았던 동네에 다시 가본 적이 있다. 그 동네에 있으니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려지며 하교할 때 즐겨 먹었던 분식 트럭의 떡볶이가 생각났다. 다른 떡볶이들과 다르게 맵지 않고 국물이 많은 주황색 소스가 특별해서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그곳이 생각나곤 했다. 거의 20년이 지났으니 당연히 없어졌겠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거리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트럭에 어린 날의 추억 속의 아저씨가 그 모습 그대로 계셨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무척 반가워하자, 아저씨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시더니 말투는 달라졌지만 얼굴이 기억이 난다고 하셨다. 그리워했던 떡볶이의 맛도 예전 그대로였고 모든 것이 변함없었다. 진심으로 행복했다.



추억의 음식에는 그리워했던 인생의 순간이 담겨 있다.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미리 사둔 좋은 재료로 만들어 주셨던 음식, 엄마가 해준 따뜻한 집밥,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분식. 추억이 얽힌 음식의 힘은 너무나도 강한 나머지, 떠올리는 그 자체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이 그리워지는 건 행복했던 여행의 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남미에서 첫 식사였던 이 식당의 음식이 가끔 생각나는 건 그토록 기다려왔던 여행 첫날의 설렘과 묘한 감정이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좋아한다. 잊고 싶지 않은 오늘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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