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희 Aug 13. 2020

혼자 있는 시간이 없더라

과거 분석 (2)

코로나 시대 2020년, 해외 혼자 살이 4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90%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 이 곳에 올 때는 장기 체류가 목적이기는 했으나 언제까지 있을지는 기약이 없었다. 평생을 살 곳인지는 살아가면서 맡겨보기로 한 상태였다. 나는 초반부터 이 곳의 생활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이제는 사실 생활 기반도 잡았고 이 곳의 언어도 기본적인 것은 구사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마음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제는 혼자 내 두발로 서서 주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


혼자 있는 시간이 뭔지 모르더라


한국 사람이라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나 역시 20대를 지날 동안 독립된 생활이 뭔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사는 공간이 되었든, 경제적인 문제가 되었든, 정신적인 문제가 되었든 부모님의 지붕 아래 늘 기생했다. 부모님은 내가 시집을 가기 전에는 독립시킬 생각이 없으신 분들이었다. 나는 독립을 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사회 초년생 계약직이 받던 월급으로 독립의 꿈을 이루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차라리 돈을 모으는 게 낫긴 했으니까.


2015년 독립을 꿈꾸던 그림일기


한국에서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주던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체감 상으로 24시간 중에 10% - 20% 정도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더 적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내 방에 혼자 있어도 늘 가족들이 곁에 있었고, 혼자 뭔가를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늘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일을 하고, 딸 노릇을 하고,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을 'ON'이라고 한다면 나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OFF'는 극히 일부였다. 'OFF' 상태의 중요성도 알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내가 혼자 있을 수 있었던 시간


'결국 인생은 혼자 사는 거다'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외롭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서 사실 힘들다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진짜 그 의미를 몸소 체험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진 후에야 그게 단순히 장난스럽게 내뱉을 만한 말이 아니라 엄청난 인생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말도 듣고, 가서 잘 지내라는 말도 들으면서 한국을 떠나왔다. 석사 생활을 할 당시에는 공부도 바빴고, 친구들과 친해지기 바빴고, 이 나라에 푹 빠져있느라 한국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재밌게 잘 지냈다. 혼자 이곳에 있다는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한 건 논문이 시작될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점점 나 혼자 나를 돌봐주고 놀아줘야 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체감적으로는 거의 24시간 중 70% - 80%의 시간을 혼자 견뎌내기 시작한 것 같다. 늘어나버린 나 혼자의 시간은 '너 외롭지? 힘들지?' 라며 날 상당히 옥죄어 왔다. 다른 것, 다른 사람들로 인해 채워져 있던 내 안의 행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많아져버린 내 시간


앞서도 언급했지만, 기숙사를 나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그 흔들림은 배가 되었다. 친구들이 차지하던 공간도 더욱 줄어들었고 '일하는 나'와 '집에 있는 나' 거의 둘 중 하나였다. 비로소 제대로 된 '독립'이었다. 나의 공간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되어있었다. 원하던 완전한 독립을 이뤘지만 외로움이라는 덩어리가 내 공간 안에 침투를 하고 있었다. 그 덩어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난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었으니까. 늘 자신만만하게 살아가고 싶으니까.


외로움이라는 덩어리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내 옆에 두기까지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 덕에 재택근무까지 하면서 24시간을 온전히 나 혼자 쓰고 있음에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사람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굳이 뭘 하지 않아도, 그냥 나 혼자 놀아도 더 행복하고 좋을 때도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외로움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니까.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 에너지 전부를 나에게 쓰고 있다. 연락이 없는 친구를 탓하지 않게 됐고, 굳이 먼저 연락을 해서 호감을 살 마음도 접었다. 그렇게 연락을 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은 걸 아니까. 고립이 되더라도 그렇게 에너지를 쓰느니 진정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이 나으니까. 적극적으로 혼자되기를 선택하면서, 혼자라도 괜찮더라 라는 마음의 여유와 평온을 기르게 된 것은 참 잘한 짓인 것 같다.


물론, 나도 사회성이 상당한 인간인지라 이러다 친구들하고 멀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가 없다. 내 곁에 남아있을 사람이라면 언제 연락이 닿아도 닿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다시 만났을 때 연락을 안 하고 만나지 않은 시간의 갭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호 채워주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랄까.


이처럼 익숙한 것에 떨어져 나와보니 보이는 것들 느끼는 것들이 많다. 특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덕에 잘 살아가는 기준이 바뀐 것에 대해 감사하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기 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 사서 고생하기로 선택한 이 Journey는 해외 경력 몇 줄 보다 더 큰 선물로 다가오고 있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외동이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