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2020년, 해외 혼자 살이 4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90%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 이 곳에 올 때는 장기 체류가 목적이기는 했으나 언제까지 있을지는 기약이 없었다. 평생을 살 곳인지는 살아가면서 맡겨보기로 한 상태였다. 나는 초반부터 이 곳의 생활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이제는 사실 생활 기반도 잡았고 이 곳의 언어도 기본적인 것은 구사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마음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제는 혼자 내 두발로 서서 주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
혼자 있는 시간이 뭔지 모르더라
한국 사람이라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나 역시 20대를 지날 동안 독립된 생활이 뭔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사는 공간이 되었든, 경제적인 문제가 되었든, 정신적인 문제가 되었든 부모님의 지붕 아래 늘 기생했다. 부모님은 내가 시집을 가기 전에는 독립시킬 생각이 없으신 분들이었다. 나는 독립을 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사회 초년생 계약직이 받던 월급으로 독립의 꿈을 이루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차라리 돈을 모으는 게 낫긴 했으니까.
2015년 독립을 꿈꾸던 그림일기
한국에서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주던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체감 상으로 24시간 중에 10% - 20% 정도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더 적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내 방에 혼자 있어도 늘 가족들이 곁에 있었고, 혼자 뭔가를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늘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일을 하고, 딸 노릇을 하고,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을 'ON'이라고 한다면 나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OFF'는 극히 일부였다. 'OFF' 상태의 중요성도 알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내가 혼자 있을 수 있었던 시간
'결국 인생은 혼자 사는 거다'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외롭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서 사실 힘들다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진짜 그 의미를 몸소 체험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진 후에야 그게 단순히 장난스럽게 내뱉을 만한 말이 아니라 엄청난 인생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말도 듣고, 가서 잘 지내라는 말도 들으면서 한국을 떠나왔다. 석사 생활을 할 당시에는 공부도 바빴고, 친구들과 친해지기 바빴고, 이 나라에 푹 빠져있느라 한국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재밌게 잘 지냈다. 혼자 이곳에 있다는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한 건 논문이 시작될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점점 나 혼자 나를 돌봐주고 놀아줘야 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체감적으로는 거의 24시간 중 70% - 80%의 시간을 혼자 견뎌내기 시작한 것 같다. 늘어나버린 나 혼자의 시간은 '너 외롭지? 힘들지?' 라며 날 상당히 옥죄어 왔다. 다른 것, 다른 사람들로 인해 채워져 있던 내 안의 행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많아져버린 내 시간
앞서도 언급했지만, 기숙사를 나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그 흔들림은 배가 되었다. 친구들이 차지하던 공간도 더욱 줄어들었고 '일하는 나'와 '집에 있는 나' 거의 둘 중 하나였다. 비로소 제대로 된 '독립'이었다. 나의 공간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되어있었다. 원하던 완전한 독립을 이뤘지만 외로움이라는 덩어리가 내 공간 안에 침투를 하고 있었다. 그 덩어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난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었으니까. 늘 자신만만하게 살아가고 싶으니까.
외로움이라는 덩어리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내 옆에 두기까지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 덕에 재택근무까지 하면서 24시간을 온전히 나 혼자 쓰고 있음에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사람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굳이 뭘 하지 않아도, 그냥 나 혼자 놀아도 더 행복하고 좋을 때도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외로움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니까.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 에너지 전부를 나에게 쓰고 있다. 연락이 없는 친구를 탓하지 않게 됐고, 굳이 먼저 연락을 해서 호감을 살 마음도 접었다. 그렇게 연락을 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은 걸 아니까. 고립이 되더라도 그렇게 에너지를 쓰느니 진정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이 나으니까. 적극적으로 혼자되기를 선택하면서, 혼자라도 괜찮더라 라는 마음의 여유와 평온을 기르게 된 것은 참 잘한 짓인 것 같다.
물론, 나도 사회성이 상당한 인간인지라 이러다 친구들하고 멀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가 없다. 내 곁에 남아있을 사람이라면 언제 연락이 닿아도 닿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다시 만났을 때 연락을 안 하고 만나지 않은 시간의 갭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호 채워주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랄까.
이처럼 익숙한 것에 떨어져 나와보니 보이는 것들 느끼는 것들이 많다. 특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덕에 잘 살아가는 기준이 바뀐 것에 대해 감사하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기 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 사서 고생하기로 선택한 이 Journey는 해외 경력 몇 줄 보다 더 큰 선물로 다가오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