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에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니까. 하지만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지난날의 상처가 사라질까?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기에 상처가 있어도 모르거나, 모른척하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다. 들춰내면 정말 많이 아프니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로 남는 상처들이 있다. 반면 어떻게 치료했는가에 따라 그 상처는 내 인생의 가치관으로 남는다.
어릴 때는 상처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금방 잊어버렸던 것 같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실컷 떨었을 것이고, 싸워서 풀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문제 상황으로부터 돌아서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하나 확실한 건 난 모든 상처를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 벗어났다. 나에겐 엄마가 어릴 적부터 모든 것을 터 놓을 수 있고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심리치료사였다. 엄마는 나에게 절대 달달한 사탕만 물려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는 공감을 해주면서도 늘 객관적인 시선에서 질문을 해줬다. 왜 그런 것을 느끼는지, 왜 힘이 든 지, 무슨 생각을 하면 그 상처들이 떠오르는지를 물어보며 함께 내 상처를 돌봐주었다.
지금도 엄마한테 상당히 감사한 시절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굳이 겪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아직 19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고 안 그래도 공부로 스트레가 많은 시기에 심리적인 타격이 상당히 크게 왔었다. 혼자 있을 때 공황장애 비슷한 것을 경험할 정도로 힘들었었고 내가 겪은 그 일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을 만큼 정신적 상처를 입은 때였다. 그 일과 관련된 단어만 들어도 즉각적으로 뇌가 반응을 하는 상황이 5년 정도는 지속되었던 것 같다. 입 밖으로도 내뱉기가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엄마한테 혼자 어떤 공간 안에 있는 게 식은땀이 나고 무섭다고, 그 일이 늘 머릿속에 이미지처럼 박혀버렸다고 말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 이때 엄마는 차분히 내 마음을 알아줬다. 그런 무서움을 느껴도 괜찮다고 그럴 때는 꼭 엄마한테 말을 해서 엄마랑 같이 무서움을 이겨내자고 했던 것 같다. 당시 아빠는 해외 근무 중이라 늘 화상채팅을 하면서 소통했다. 현지어로 된 노래 중에 본인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곡이 있다며 들려줬는데,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노래를 듣고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치료해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이제는 그 일에 대해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고 관련 단어를 들어도 괜찮다. 조금 불편할 때는 안 들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치료는 그래도 계속 진행 중이다. 내가 이만큼 상처를 편안하게 감싸 안게 된 건 매해 부모님과 그 상처를 한 번씩 보듬는 우리 가족만의 행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달까. 매해 상처를 마주하면서 편안하게 보듬어주고, 그것을 즐거운 일과 함께하면서 놓아주는 것이 마음의 짐을 덜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해외에 나와 있어 직접 참여를 못할 때도 부모님은 나를 위해 한 해도 빼지 않고 가족 행사를 진행 중이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30대에 들어선 이 와중에도 힘들 때는 늘 부모님을 우선으로 찾는다. 부모님과 대화를 거의 안 하는 사람들이나 힘들어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말을 못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나는 힘들 때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을 잘 못하겠어도 부모님한테는 무조건 말을 해야 숨통이 트이던데... 다른 사람들한테 힘들다고 말하기까지는 아직도 잘 내뱉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니까. 다만 부모님은 내가 유일하게 나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도 되는 품이라 그게 가능한 것 같다. 나의 vulnerability를 드러내는 공간이 꼭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찾지 못했다 하더라고 그 동굴의 위치는 나 스스로만이 찾아낼 수 있다. 안전하게 내 상처를 꺼내 놓고 마주하며 치료할 수 있는 그런 동굴.
혼자 살면서 부모님 이외에 '나만의 공간'이라는 또 다른 동굴을 발견했다. 이 속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힘들면 울었고, 슬퍼도 울었고, 이 때는 다른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기 싫어서 시간당 한번씩 켜보던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들도 다 지워버렸다. 마음의 상처는 다양하다. 주로 내가 경험한 상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였다. 친구와의 다툼이 되었든, 연인과의 이별에서 오는 상처였든, 혼자와의 싸움에서 오는 힘겨움이었든.
상처를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서 내가 어린 시절과 다르게 행동한 것은 바로 내 상처의 근본적인 치료법을 알아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일정 부분 반복되어 돌아오는 상처들이 있었다. 돌아올 때면 늘 나를 구렁텅이 속으로 빠뜨렸기에 꼭 스스로 치료를 해서 그 악연을 잘라내고 싶었다.
처음으로 실천한 일은 힘들다고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해봤다.
출근을 하면 매일 같이 듣는 질문이 있다.
'How are you?' 혹은 'How was your weekend?'
그럼 보통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대답은 나온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 Yeah, just chilled and relaxed.'
나는 대신 느끼는 그대로 답을 했다. '나 요새 좀 정신적으로 힘들어. 혼자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드네, 우울증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잘 견뎌내려 노력 중이야.'
이런 솔직한 대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언제든 또 얘기를 하고 싶으면 터놓으라며 동료들은 말해주었다. 혼자 하는 해외 생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이렇게 잘하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응원도 해주었다. 이전의 회사에서는 이런 감정적 교류를 잘하지 않던 나는 마음이 힘들다고 말을 해도 이해를 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더 편안하게 동굴 밖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습관을 들였다.
동굴 밖에는 나에게 상처가 된 사람 혹은 상황들이 계속 존재했다. 그 존재들을 갑자기 마주 할 때마다 나는 심하게 흔들렸고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나는 또 무너졌다. 그래서 흔들림이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너 지금 네가 이렇게 흔들리는 게 좋으니, 싫으니.'
'싫어.'
'흔들리면 결국 힘들 거라는 거 아니 모르니.'
'알아.'
'그럼 계속 그 생각을 해야겠니, 그만해야겠니.'
'그만해야지.'
신기하게도 질문의 루프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은 점점 단축이 되었다. 점점 더 내가 해야 할 일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는 멀어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부모님 이외의 조력자(?)도 찾았다.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과 심리 상담가들의 온라인 강연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고, 특히 자기 계발서는 더더욱 안 읽는 사람이지만, 제목을 보자마자 내 상처 치료에 도움이 될까 하여 펼쳐보게 된 책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책을 해답지라 생각하며 마음에 와 닿는 구절 하나하나 실천해보면서 읽은 책인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온전히 혼자에 집중하는 힘을 기르면서 마음의 상처에서도 멀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평범한 대학원생 사이토 다카시를 유명 저자이자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불과 2~3년 전만 해도 혼자 밥을 먹는 풍경은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혼자 밥 먹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혼밥(혼자 먹는 밥)’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했다. 대학생과 20~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열에 아홉은 혼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절반은 혼밥을 즐기지만, 나머지 절반은 어쩔 수 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혼밥이 꺼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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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심리 상담가들의 동영상들 중에는 인상 깊은 동영상이 하나 있었다. '마음의 상처는 정신적 상해와 같다. 피가 안 보일 뿐이지 몸에 상해가 입혀지면 수술을 해야 하듯, 정신적 상해 역시 충분히 치료를 해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내가 정신적 상해를 입었음을 알고 그것을 치료해줘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게 해 준 강연이었다.
이렇게 나는 내 상처에 대한 계몽(?)을 하며 스스로 치유를 시작했다. 사람마다 그 방법은 다르겠지만 내가 내 상처를 마주하고 치료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마음의 상처에서 완벽히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지금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해진 내 모습을 보고 있다. 상처에서의 회복은 나에게 경험, 그리고 가치관이라는 묵직한 내공을 남겨줬다. 심지어 즐거웠던 순간과 연결하여 내 동굴에 별명도 붙여주며 동굴을 '상처와 즐거움이 공존하는 나'로 가득 찬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다시 똑같은 상처를 마주했을 때 100%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 함정에 빠지지 않고 금방 발을 뺄 수 있는 회복력은 업그레이드되었다고 본다. 그렇다. 결국 시간이 약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