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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Sep 22. 2020

혼자 할 수 있더라

진정한 홀로서기

나는 외동으로 태어나서 나름 혼자서도 잘 놀고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많다 생각했다. 혼자 미술관을 가고 혼자 집에서 놀고 공부하는 것은 잘했으니까. 막상 온전히 혼자가 되고 보니 내가 생각보다 혼자 해본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거나 영화관을 간 적도 거의 없었고 여행도 혼자 한 적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누군가랑 같이 하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나에게 집중하는 루틴 만들기


혼자의 라이프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바로 그 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그 외로움 덩어리를 잘 데리고 다닐 만한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무너져 있던 루틴을 새롭게 짜는데 집중했다. 일상을 살아가며 그때그때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 보면 시간은 나도 모르게 가있으니까. 먼저,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헬스장은 사람들이 혼자 몸을 가꾸는데 집중하러 오는 곳이다 보니 그 속에서 나도 혼자 열심히 몸을 단련시키는 재미가 쏠쏠했다. 헬스장에는 다양한 그룹 클래스들이 있어서 관심 있는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룹 클래스 중에는 요가와 복싱을 시도해보면서 한 시간 동안 심신단련을 하고 나서 느껴지는 정신적 신체적 만족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요가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 정신적 만족도가 정말 높다. 내가 스스로에게 나의 상태를 물어가며 천천히 한 동작씩 집중하다 보면 나 자신과의 소통능력은 분명 향상이 된다. 버겁던 외로움을 조금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요가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게다가 홈트레이닝으로도 가능하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도 집에서 놓지 않고 단련 중이다. 그렇게 나는 평생 가져갈 만한 취미를 하나 얻었다.


원래 나의 취미이던 합창도 다시 시작했다. 동네에 있는 대학 내 문화센터에 합창 클래스가 있는 것을 발견한 후 바로 등록을 해서 다녔다. 정말 노래가 하고 싶어서 갔다. 합창을 하면 그 순간 내가 내는 음에 집중을 하게 되고, 옆에 사람이 내는 음에 집중을 해서 노래를 하기에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된다. 합창 후에 귀갓길은 피곤한 늦은 저녁이어도 머리가 맑고 발걸음이 가볍다. 집중하여 노래한 순간 동안 내가 가진 문젯거리들은 생각하지 않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 것이다. 친목도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혼자 집중할 만한 루틴이 필요해서 선택한 클래스라 친구는 생겨도 좋고 아님 말고 정도로 생각하고 온전히 내적 만족감 충족에 집중하면서 다녔다.


마지막 한 가지는 필요에 의한 공부를 했다. 해외에 살고 있고 공용 언어가 영어가 아닌 곳에 살고 있기에 생활 속 편의를 위해 이 나라의 언어를 더 제대로 습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까지 받아들이게 되고 언어를 익힐수록 점점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재미가 생기니까. 이렇게 나는 퇴근 후 그리고 주말의 일상을 채워갔다. 일상이 채워지면서 점점 나를 다시 찾아갔고, 그때부턴 나를 누르던 외로움 덩어리를 옆에 앉히고 친구 삼아 다닐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혼자가 되어보기


우선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습관을 줄이고 인간관계에 힘을 빼기로 했다. 혼자 잘 있기 위한 첫 번째 단계였다. 내가 늘 먼저 연락해서 만나는 인간관계는 의문을 남겼다. '나만 만나고 싶나?', '내가 연락 안 하면 안 만날 친구인가?'라는 쓸데없는 질문들이 피어났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고 필요 없는 에너지 소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생각일 뿐이고 막상 만나면 즐거웠으니까. 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만남과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만남은 분명히 있다. 혼자 잘 있는 연습을 위해서는 모든 에너지를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기에 자연스럽게 내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줄여갔다. 이어질 인연이라면 서로 너무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니까. 장기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에너지 소모적인 관계는 잠시 놓아주는 것이 좋다 여겼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이유도 있었지만 나의 에너지가 낮은,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도 싫었다. 타인에 의존하여 채워진 만족감은 그 대상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공허함을 남겼고 악순환을 반복시킬 뿐이었다. 나의 정신적인 힘듦 상태를 상대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그렇듯 나도 상대와 에너지를 공유하는 사람이고 싶지 상대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때그때 마음의 소리를 따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혼자 해보면서 나는 다시 나만의 에너지를 채워갔다. 안 해보던 짓들을 하니 나름 재미가 느껴졌다. 혼자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허기가 져서 늦은 점심을 위해 식당을 들어가 앉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 들어가서 인지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편안하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의 맛에 집중을 하면서 먹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다. 생각보다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밥을 먹는 것은 일상이고 나는 다만 혼자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니까. 오히려 나를 대접해주는 기분이 들고 내가 식당 혼밥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 정도였다.


혼자 영화도 보러 갔다. 영화관을 가는 것은 가족 나들이로 주로 하던 거라 혼자 영화관은 간 적이 거의 없었다. 한동안 재미난 개봉작들이 많아서 종종 영화표를 끊어 들고 집 앞에 있는 영화관으로 나들이를 갔다. 혼자 앉아서 보기에 좋은 자리를 선점해서 영화 상영시간만큼은 영화에 집중해서 그 허구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가 나왔다. 혼자 키득거리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하면서 영화관을 들락날락거렸다. 영화 상영시간만큼은 내가 혼자 왔던 둘이 왔던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불 꺼진 어둠 속에서 관람객들은 스크린 속 이야기에만 집중하니까.


혼자 라이브 공연도 보러 갔다. 한 호텔의 루프탑에서 하는 라이브 재즈밴드의 공연을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늘 누군가와 같이 가려고 하면 뭔가 안 맞아서 그냥 혼자 가서 즐겨보기로 했다. 물론 친구와 연인과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혼자 갔어도 반겨주는 호스트들 덕에 편안하게 즐기다 왔다. 혼자 진토닉도 두 잔 드링킹 하면서 공연장에 온 사람들을 관찰하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랑 갔더라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신나게 놀다 왔을 것 같지만 처음으로 혼자 공연을 보러 왔고 라이브 재즈 음악에서 활기찬 에너지를 얻고 왔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경험상 같이 하는 문화생활은 서로가 그때 느끼는 느낌을 그 즉시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고 혼자 하는 문화생활은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잠시 다른 세계로부터 힐링을 받는 시간이라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요리를 한두 가지 시도해보며 요리를 하는 재미도 알아갔고 퇴근 후 금요일 저녁은 집에서 하는 혼술의 날로 편안하게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던 와중 혼자 여행도 계획했다. 여행 겸 친구 방문이었다. 친구는 일을 해야 했기에 주중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내고 저녁에만 잠깐씩 만났다. 숙소에서 여유롭게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혼자 주변을 둘러보러 나가거나 바닷가에 앉아서 책을 읽고 멍을 때리거나 사진을 찍었다. 작은 그룹 투어도 신청하여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특별한 스케줄에 얽매여있는 여행이 아니라 여유롭게 때론 현지인처럼 움직이다 보니 새로운 공간과 풍경이 주는 신선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새로운 것들로 나를 가득 채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걱정거리들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통 여행 후에는 피곤함이 남아있기 마련인데 처음으로 여독이 전혀 없는, 뭉쳐있던 어깨의 근육이 다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나한테 선물한 정말 꿀 같은 시간이었다.

혼자 좋아서 발장구 칠 때


사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서 밖으로 전혀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외로움이나 무료함이 극대화된 상황이긴 하다. 밖을 나갈 수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다시 견디기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들었다. 혼자 덩그러니 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계속 사는 것이 결코 즐거운 기분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간 혼자 있는 훈련을 해서 인지 혼자 있는 것 자체가 힘들 던 때처럼 나락으로 빠지진 않는 것 같다. 나름 집 안에서의 루틴을 다시 만들어서 차분히 견디고 있다. 외로울 땐 장난스레 가족들과 친구들한테 외롭다고 연락도 한다. '말 안 해도 다 알아 인마'라고 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기에 그나마 또 하루 버텨낸다. 혼자이긴 해도 사실 혼자가 아닌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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