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해외 생산지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기업이 해외에 생산지를 만드는 목표는 비용 절감. 국가마다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싼 땅 값, 절감되는 운송비와 관세, 저렴한 노동력과 에너지 비용 등의 이유로 그곳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본국에 비해 한없이 낮은 인건비. 공장이 많은 국가들을 살펴보면 그렇다 사람 값이 싼 곳이다. 사람이 싸다는 표현이 거북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마시는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값보다 낮은 일당을 지급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넘치고 또 넘친다.
해외 공장 근무 시절, 급여일 ATM기 앞에 늘어선 긴 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급여를 모두 현금으로 뽑아서 간다고? 그렇다. 그들은 월급을 받는 정직원이었지만 현실은 일용직이나 다름없었다. 인출한 현금은 지난 한 달동안 여기저기 진 빚을 갚는데 쓰이고, 남은 돈은 그 날 밤 술값으로 탕진되었다. 급여 다음 날 생산 라인 출근율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때로는 라인을 가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룻밤의 취함을 위해 그들은 한 달동안 라인의 쳇바퀴를 버티는 것이었다. 그들의 삶은 크레딧 인생이었다. 빚을 지고 빚을 갚는 싸이클.
공장 근무 2년이 될 무렵 새로운 생산 담당 임원께서 부임해 오셨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면 안 되겠지만 공장에 부임해 오시는 분들은 강해 보인다. 거칠어 보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임원은 하얀 얼굴에 금테 안경을 쓰고 온화한 미소를 가진 분이었다. 그 때 마음 속으로 '이렇게 거친 공장에서, 툭하면 술마시고 결근하고 과격한 말들을 쏟아내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리드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부임하시고 처음 시도하신 일이 라인 근무자들로부터 받는 VOE(Voice Of the Employee) Box. 오랜 해외 근무 경험으로 '저 의미없는 액션을 꼭 하셔야 하나? 보나마나 불만만 가득 적힌 종이들을 모으는 일인데'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양반, Box와 더불어 VOE 미팅을 시작하시는 거 아닌가. 거친 라인 노동자들은 필터링 없이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었다. 그 공격을 감당하실 수 있으실까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정례 일대일 미팅에서 살그머니 여쭤 보았다. 그 미팅 괜찮으시냐고, 이 사람들 다혈질에 공격성이 대단한데 정말 괜찮으시냐고. 돌아온 대답은 '나도 사람인데 괜찮겠어요. 안 괜찮아요. 그래도 백명에 한 명 정도는 진짜 문제해결을 내 놓아요. 그거면 된 거에요.' 임원 아무나 하는거 아니구나. 그 1%가 가지는 힘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달 뒤, 생산부문 현지 직원들 급여가 대폭 상향 조정되었다. 숫자를 만지는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이 사실이 상당히 불편했다. 인건비율은 올라가고 생산성은 낮아지고. 꼭 이러셔야 했나.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사람은 구해질텐데. 어느날 야근을 준비하며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그 임원과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현지 생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여 인상 이야기가 나왔다. 이전에도 우리 직원들 급여가 낮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 분께서 가만히 들으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 회사 글로벌 기업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들 우리가 선택한 사람들이에요.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판단했고 채용한 거에요. 우리 수준에 맞는 대접을 해 주는게 맞아요.'
현지인들을 사랑하고 존중한다고 자부했던 마음이 바사삭 부서졌다. 진정한 존중이 무엇인지 그 날 그 분을 통해 배웠다. 현지에 오신 지 1년도 되지 않았던 그 분을 통해서. 사람을 도구가 아닌 존재로 보는 마음과 자세. 기업이 해외 생산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래야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