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로 또 가야 하는 일이 생겨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다.
책이 없으면 불안한 나는 추석연휴를 생각하며 약 10권이 넘는 책을 챙겼고 이걸 들고 지하철을 탈 용기가 나지 않아 택시를 불렀다.
근처에 택시가 없는지 약 10분 거리에 택시가 잡혔고, 나는 이것도 다행이라며 짐을 바리바리 챙겨 택시를 타러 갔다.
택시를 탔다.
탄지 얼마 되지 않아 기사님이 검은색 노트를 한 권 나에게 넘겨주시며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나는 뭔가 해서 공책 표지를 봤더니 ‘마음의 낙서’라고 적혀있었고, 이미 많은 택시 손님들이 마음의 낙서를 남겨두고 가서 반쯤 넘겼더니 공책의 빈 페이지가 나왔다.
오늘 방충망수리스하이(전 편 참조)를 느끼고 이런저런 사람도 만나고 다이내믹했던 하루의 끝에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만난 택시 같은 기분?
이런 게 운명일까 싶었다.
게다가 나는 나름의 글쟁이가 아닌가.
택시기사님의 심금을 울려보겠다며 열심히 글을 썼다.
다 쓰고 노트를 덮었더니 택시기사님이 기차역에는 왜 가냐고 하셨다.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내일 당장 뵈러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에 급히 부산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은 마음에는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사는 거라고, 아가씨는 좋은 마음을 가졌다고 칭찬해 주셨다.
감동을 쉽게 받는 나는
“저는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오늘 하루의 마지막에 기사님을 만났을까요?”
라고 진심으로 기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기사님께서 전생이 본인이 나에게 다 갚지 못한 빚이 있어 그걸 갚기 위해서 택시를 태우고 역에 데려다주는 걸 거라고. 그게 전부일 거라며 이런저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약간 울컥하면서
“다음에 기사님 또 뵙고 싶어요! 기사님 건강하세요! “하면서 내렸다.
내리면서 본 택시미터기에는 8,700원이 찍혀있었다.
기차역을 갈 땐 자주 택시를 탔기에 그 정도 가격이 맞아서 그냥 별생각 없었는데..
잠시 후 뜬 결제 내역에는 12,300원..
아무래도 상담비는 별도였나 보다.
* 시내라 고속도로비 등 추가 비용 없음!!
상담비가 얼마인지는 계산하지 말아야지..
웃음이 난다..ㅎㅎ
그래도 기사님은 따뜻하셨다.
오늘의 날씨만큼..
주책은 조금, 감동은 적당히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