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되면 저렇게 생길 줄 알았지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때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하게 되는 줄 알았다.
어린이는 어린이처럼, 어른이면 어른답게.
어릴 때부터 여동생이랑 마트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숨바꼭질을 한다거나 길을 가다가 괜히 머리를 때리고 도망을 가는 짓(?)을 했다.
아니면 모퉁이에 숨어있다가 놀라게 하기, 바퀴벌레 모형을 엄마, 아빠, 동생 동선에 두고 카메라를 켜두고 혼자 웃기.
머리카락을 뭉쳐서 벌레인 척 놀라게 하거나, 엄마와 아빠가 졸고 있으면 유튜브에서 ’ 모기소리‘를 틀고 귀에 대서 셀프따귀로 잠을 깨게 한다던가.
그런 행동을 중학교 때까지 하면서도 고등학교 때가 되면 안 하겠지 했고, 고등학교 때도 하면서 어른이 되면 안 하겠지 하는데 불과 며칠 전까지도 그러고 놀았다.
사실 오늘은 몇 년 만에 무더위로 미사를 보는데, 동생이랑 맨 뒤에 앉아서는 내가 동생한테 장난을 치려다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나 언제까지 이러고 놀려나..
나쁜 행동이 아니니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오늘 문득 내 나이가 생각나면서 아직도 이러고 노는구나 싶었다.
약간의 한심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이 나이 먹고 아직 이런 행동을 하는 내 또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과연 나이에 맞는 행동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아니 것보다,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려면 얼마나 큰 자제력과 자기 조절력이 필요한 걸까!
아니, 저런 재밌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면.. 내 삶은 팍팍해질 거야..(?)
아무튼 이런 나도 어릴 때부터 그려온 서른 살의 모습이 있다.
퇴근을 하고 현관에서 구두를 벗으며 긴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고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켠다.
아, 넘치려는 캔맥주를 빠르게 입을 대고 마시는 걸 빼먹으면 안 되지.
뭐 이건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퇴근 후 한 장면이지만 나에게는 이 장면이 서른 살에게 맞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퇴근 후는.. 애초에 머리를 기르지도 못했고 구두도 신고 다니지 않고 맥주를 그렇게 자주 마시지도 못한다.
아무튼 이런 미디어에서 만들어 준 이미지와 함께 어디서나 도도하고 시크한 멋있는 여자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나이에는.
그런데 여전히 때리고 도망치고 안 맞으려고 숨고..
나쁘지 않은데 나만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단순히 장난만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의 넓이, 생각의 깊이… 등등 내가 기대했던 서른 살과 다른 점이 꽤 있는데..
아휴 몰라 추석인데 너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