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따시와 오타쿠데스!
나는 어릴 때부터 뭔가 하나를 진득하니 오래, 깊이 좋아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지만 30년을 살면서 정말 좋아했던 가수 그룹은 g.o.d.
하지만 내 나이로 봤을 때 지오디가 한침 활동할 때는 내가 미취학아동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위아래로 분홍색 내복을 입고 ’ 하늘색 풍선’을 티비에 나오는 지오디를 보며 흔들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우리 집 자동차가 ‘라노스’였는데 테이프를 넣을 수 있었다. 지오디 테이프를 엄마한테 사달라고 졸라 어디 갈 때 틀고 다녔던 것 같다.
음 지금 내 기억이 마치 오래된 티비처럼 지지직거리는데 알고 보면 엄마가 ‘팬지(지오디 팬덤)’였던 건 아닐까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지오디를 지나쳐 나의 또래와 수준을 맞추기 위해 중학교 때 또래가 좋아했던 비스트, 엠블랙, 엑소, 슈퍼주니어, SS501 등등의 다양한 가수들을 좋아하려고 애썼다.
일명 빠. 순. 이 들이 부러웠다.
연예인 이름으로 된 명찰을 달고 다니고, 연예인 사진으로 도배된 필통을 들고 다니고 앨범을 사러 부산 서면 ‘신나라레코드(지금은 가면 안 될 곳으로 밝혀진•••)‘로 뛰어가고..
나는 못했다. 진심이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나를 잠 못 이루게 만드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 마츠모토 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린다..
친구 한 명과 일본 드라마에 도전하다 일드‘꽃보다 남자’를 보기 시작했다.
꽃보다 남자는 2005년 시즌 1(9부작), 2007년 시즌2(11부작) 그리고 대망의 파이널 2008년 꽃보다 남자 F(영화)로 끝이 난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가 2010년이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 모든 시리즈를 ‘한 번에 몰아보기’ 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중에도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대는지.. 내가 조금 전 마신 돌체라떼 때문일까.. 마츠준 때문일까..)
그래서 공부 대신 일본 ‘꽃남’을 밤낮없이 몰아봤다.
우리 엄마 파마보다 더 잘 볶아진 ‘도묘지 츠카사’의 보글보글 머리와 양아치스럽고 야마리(?) 없는 ’ 오이(어이)‘가 왜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지..
루이 센빠이도 멋있어 보였다..
아니 니뽄의 F4는 정말 꽃 그 자체다.
(우리나라 꽃남은 진짜 내가 화딱지가 난다.)
아무튼 그때 내가 병에 걸렸다. 상사병.
나는 나의 마츠준에게 미쳐있었고,
(지금은 츠카사(이노우에 마오)의 마츠준이 되었지..)
어떻게 하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를 밤낮 고민했다.
일본어를 공부할까, 돈을 모아 일본으로 유학을 갈까..
근데 그때 마츠준을 실제로 못 보는 것이 나에게 너무 아픔이었다. 첫사랑의 고통이랄까.
그래서 내가 베스트로 꼽은 방법은
우리 딸의 죽기 직전 마지막 소원 프로젝트
저 이름은 그냥 내가 붙였다.
우리 엄마아빠는 알면 뭐 지금이야 콧웃음 치고 넘어가겠지만 그때였으면, 공부 안 하고 이상한 소리 한다고 뭐라 했을 거다.
그 프로젝트의 내용은 바로 내가 상사병에 걸려 하루하루 앓다 부모님께
‘엄마 아빠, 내 마지막 소원은 마츠모토 준을 보고 죽는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 엄마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마츠준을 내가 누워있는 병실로 데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같은 효녀)
그리고 마츠준이 나에게 빠지도록 만들어 결혼
(갑자기?,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휘성)하는 것이었다.
이 생각을 한몇 달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뭐 상사병이 정말 심신에 온 병은 아니었고 한참 사춘기 때의 호르몬의 농간 정도였던 것 같다.
(아니 근데 중국에 이렇게 한 사람 있더라?
사람 생각은 역시 다 비슷하다. 다만 실천력의 차이인 것 같다. )
그 이 후로 그다지 좋아하는 배우도 연예인도 없었다.
그 이후에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일본 애니’이다.
뭐 일단 제목을 오타쿠로 지었으니 (꽃남으로 할 걸 그랬다. 너무 신나서 우리 마츠준 얘기를 많이 했다.) 그나마 내가 내 또래 여자애들보다 조금 더 많이 본다, 조금 더 좋아한다 싶은 일본애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쬐끔.
‘도로헤도로’, ‘플루토’, ’ 도쿄구울‘, ’ 주술회전‘, ’ 체인소맨‘, ’ 비스트맨’, 등등 웬만해서 넷플릭스에 있는 메이저 애니는 거의 다 봤다.
이건 중학교 때의 일본드라마를 미친 듯이 본 그 경험과 추억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일본 애니를 틀어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세카이(이 세계) 참 좋다.
아니면 전생에 내가 니혼진이었을까..
하지만! 여느 한국인처럼 일본은 일단 아묻싫이다.
일본자체는 말이다.
(축구는 무조건 이겨야 하고.. 그런 거..)
아무튼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나보고 ‘오타쿠’라고 부른다. 내가 집 티비로 애니를 틀어서 보기 때문이다.
근데 ‘오타쿠’라고 불리는 게 좋더라.
나도 드디어 누구보다 특정한 무언가를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서.
남들도 알만큼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아빠가 동생한테
‘느그 언니 오타쿠다.’ (부산 사투리)라고 하면 나는 좋아서 웃는다.
우리집 오타쿠는 나다!!
와타시와 오타쿠 데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