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 나,
업무상 본사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여전히 근무하는 몇몇의 가해자와 가해자들의 옹호자들이 근무하는.
원래도 본사를 가는 것은 언제나 긴장됐지만 ‘직장 내 스토킹 사건’ 고발로 내부고발자로 찍힌 나로서는 더더욱 긴장되었다.
피해자임에도 고개를 뻣뻣하게 들지 못하는 현실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긴장을 하고 들어간 본사에는 다행히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과 먼저 마주치고 반겨주었다.
그 덕에 긴장감은 조금 풀 수 있었지만 불안감으로 약은 중간중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본사에서의 일을 이렇게 저렇게 듣다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쓴다는 타 직원들에 대한 증거를 직접 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옮긴 근무지에서도 회사 동료를 통해 듣긴 했지만 막상 그 증거들을 보니 참을 수 없었다.
그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부장급.
나는 대리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제는 회사에 없지만 과장급.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가슴을 부여잡으며 회사건물 밖으로 나가 펑펑 울었다.
그 감정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엄마가 직접 싸워주겠다 회사로 찾아오겠다 했지만 내가 말렸다.
그 대신 나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떨리는 심장으로 그 가해자를 찾아갔다.
나에게 가해를 한 사람을 옹호하는 것으로 모자라 회사에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탄원서를 받는 그 사람을.
부장님. 저랑 이야기 좀 해주세요.
상사를 처음으로 바깥으로 불러내 보았다.
그리고 말을 했다.
저한테 죽으라는 건가요.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시면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그때 그 사건을 덮으신 걸로도 모자라 이제 그 범죄자를 위해 탄원서까지 받고 계신가요.
저는 오랫동안 그 스토킹으로 죽고 싶었고 회사에 신고했더니 배신을 당했고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었다.
그랬더니 그 가해자의 인생이 불쌍해서 그랬다 한다.
가해자는 이제 다른 공공기관 취업이 안될 텐데 그게 불쌍해서 그렇게 도와줬다고 한다.
그럼 언제 치료될지 모르는 우울증과 불안으로 약을 1년 넘게 먹는 나는, 그리고 그 가해자가 언제 찾아와 보복을 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비슷한 차, 비슷한 생김새만 봐도 몸이 굳어버리는 나는.
그것 말고도 사건의 초반부터 그녀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그 사정이란 게 내가 알고 있는 그 사건의 전부였음에도 나는 그녀를 되려 걱정하고 있었다.
이것도 병이겠지.
나는 용서를 해주고 말았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양손을 잡고 내가 되려 위로를 해주었다.
내가 피해를 당했는데도, 내가 피해잔데도 내가 울었고, 내가 가해자를 불쌍히 여겨야 했고, 내가 가해자를 불쌍히 여겨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뭘까.
악을 품고 있던 마음이 씻겨지는 듯한 감정에 이건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단지, 상대방보다 잘못을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고, 그 정도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후회도 됐고 나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나를 미워한다면 나에게 더 못할 짓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했다. 용기 있었고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