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다
아무도 원하지 않아 버려진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에서 그 아이를 발견한 개가 있습니다. 아이는 눈을 감을 수 없어 모든 걸 볼 수 있었고 개는 눈을 뜰 수 없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운명처럼 시작된 이들의 만남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듯했으나, 눈을 감지 못하는 아이의 괴로움이 점점 커져가면서 개는 아이를 도시의 평범한 삶으로 보내줍니다.
도시에서 창문을 닦으며 마주한 사람들의 불행한 모습을 견딜 수 없던 아이는 눈을 감을 수 있는 법을 알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지친 걸음으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벤치에서 사마귀를 만나고, 하수구에서 세피아를 만나며, 그리고 잊지 않고 자신을 찾아낸 개를 통해서 마침내 아이는 눈을 감는 법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아이는 왜 눈을 감을 수 없었을까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이유를 제외하면) 보통 이 말은 두 가지 경우에서 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기다림의 상황과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을 앞두고 있는 불안의 상황이 그것입니다. 모두에게 버려진 아이는 어쩌면 이 두 가지의 모든 상황에 처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가족을 기다리면서 자신 앞에 닥쳐올지도 모를 불행을 두려워하며, 아이는 그렇게 눈을 감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보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물리적 대상을 시각적으로 지각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분별하고 통찰한다는 내적인 의미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시각을 상실했던 개는 누구보다 환하고 따스한 마음의 눈으로 아이를 발견하고 돌보며 찾아내었습니다. 눈을 감은 채 남들은 보지 못하는 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중략)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_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버려진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곁에는 또 다른 버려지고 은폐된 이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무관심했던 도시의 사람들과 달리 개, 사마귀, 세피아는 아이의 고통에 반응했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부유한 도시의 삶은 개인들이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만들었지만 가난하고 더러운 구석의 삶은 서로를 향한 진정한 우정과 연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빛과 온기를 나누며 삶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실현시켰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_모닥불, 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