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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컨리 May 21. 2020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조새

마이어 베어

오락을 영어로 하면 "엔터테인먼트(enterainment)"다. 이 말의 어원은 '특정한 틀로 붙들어 두다.(entretenir)'라는 뜻의, 12세기 프랑스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엔터테인먼트는 오락보다는 조금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는 다양하다. 우리나라 음악 분야를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세 개 있다. SM, JYP, YG 회사이다. 음악 분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조새 같은 인물이 있다.

바로 오페라 작곡가인 "마이어 베어(Giacomo Meyerbeer)"다. 신기하게도 '마이어 베어'가 주로 활동한 나라가 프랑스다.


< 마이어 베어 / 구글 검색 >


프랑스 파리가 그 당시 오페라의 세계 수도였다. 프랑스는 1791년과 1793년에 저작권법을 제정하여 예술가들에게 지적 재산권을 평생 누릴 수 있게 해줬다. 1840년대까지 프랑스는 공연 인세를 법적으로 보장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단속하는 유일한 나라였다. 단, 오페라의 대본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프랑스인은 옛부터 자국어에 대해 자긍심이 대단하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프랑스인이 근무했었다. 자국어에 대한 것을 물어봤다. 생각한 것처럼 대부분 국민들이 프랑스어에 자긍심이 높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너는 왜 영어를 배웠냐?라고 물어봤다.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라고 당연한 대답을 말하게 한 기억이 난다.


파리는 마이어 베어에게 이상적인 법적 환경을 마련해줬다. 그는 오페라에 들어가는 각종 창조적 요소들을 완벽하게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 관점에서 그런 요소들로부터 수익을 올린 '최초의 작곡가'이다. 로시니는 흥행주를 위해 일한 직인(자기 손 기술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마이어 베어는 자신의 오페라 사업을 직접 주도하는 "사업가"였다. 회사만 만들지 않았지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비슷하게 돈을 벌었다. 그는 대본가를 장인으로 고용하여 극장과 가사 출판사의 주문에 맞춰 일하게 했다. 그것은 대규모 연예 사업체로 볼 수 있다. 파리 오페라는 그에게 이상적인 무대를 마련해줬다.

예전 로시니가 주름잡고 있던 오페라 형태에서 더 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화려한 무대 장치, 장대한 효과를 갖춘 대규모 오락을 관객들은 요구했다. 파리 오페라 극장도 관객들의 요구를 수용해 5막으로 된 음악 드라마, 즉 "그랜드 오페라"를 요구를 했다. 그것을 로시니는 실패했고, 마이어 베어는 관객들이 요구한 것을 만들었다. 그는 그랜드 오페라 분야의 첫 번째 작곡가가 된다.

'그랜드 오페라'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가 오페라 무대에 혁명을 일으키기 전까지 음악 드라마의 가장 대규모 형태였다.


< 악마 로베르 / 구글 검색 >




마이어 베어 "악마 로베르"는 첫 공연에서 성공을 거뒀다. 주된 수익원은 전지 악보(sheet music: 한 장 짜리 전지에 인쇄한 악보)의 형태로 시장을 겨냥하여 다양한 원곡을 편집하는데서 나왔다. 오페라의 상업적 성공과 전지 악보의 발간은 서로 의존 관계에 있었다. '악마 로베르'의 멜로디는 다양한 형태로 발간되었다. 오페라의 장기적인 성공에 기여했다. 초연 후 3년 내에 '악마 로베르'는 뉴욕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10대 국가의 77개 다른 악단에 의해 상연되었다. 그때까지 창작한 그 어떤 오페라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어떤 작품보다 '악마 로베르'는 그랜드 오페라를 어떻게 제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되었고, 그 후에 나온 "예언자"를 통해서도 크 성공을 거뒀다. 마이어 베어는 시기 세력들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는 사람이었다. 부자였고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아프리카"는 그가 죽기 직전에 완성되었다. 19세기 오페라계에서 큰 업적을 쌓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명성은 추락했다. 그의 음악은 천박성, 예술의 상업적 예속화 등의 대명사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그의 작품은 오페라의 레퍼토리에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조새적인 인물임엔 틀림없다.  



< 유러피언 >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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