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얻고 열을 잃었나
조리원을 퇴소하고 집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며칠 동안 이유를 알 수 없이 울어대는 아기를 보며 안절부절 못한 날, 수면 부족으로 혹은 하도 울어서(얘가 아니고 내가;;) 머리가 띵하게 아픈날 등이 있었다.
그런 날들을 연속해서 며칠 보내고 보니 나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다.
1. 신체 건강
일단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다. 아이의 '먹(고) 잠(자고)' 패턴에 따라 2시간이나 3시간마다 한번씩 일어나서 아이를 봐야했다. 다행히 며칠간은 산후관리사분을 모시기도 했고 남편과 함께 하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 수면의 질이 확연히 좋아지지는 않았다.
자다가도 아이의 작은 소리(낑낑대거나 켁켁대거나 울거나 등)만 들리면 눈이 번쩍 떠지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은 근심걱정에 제대로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제왕 후유증도 있다. 가른 배 주변이 너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다. 긁으면 안된다고 알고있지만 나도 모르게 그 주변으로 손이 간다. 가려움을 참아야 하는 고통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굉장한 스트레스다. 복부 통증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튀어나온 아랫배를 누르거나 복압이 가해지면 통증이 있다. 아기를 안았을 때 아이가 발버둥을 치면서 내 배를 발로 찬 적이 있는데 너무 아파 깜짝 놀랐다. 남편이 껴안아줄 때도 살짝 눌린 배에 불편한 통증이 가해진다. 내 배가 내 배같지 않은 감각도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언제쯤 출산 전 몸으로 돌아갈까? 돌아갈수나 있을까?
조리원에서는 특별히 느끼지 못했던 관절의 늘어짐이 이제야 현실감있게 다가오고 있다. 아이를 수시로 안고 들고 하기 때문이겠지. 발목, 팔목, 무릎, 허리 등등이 흐느적 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안볼 수는 없다. 여전히 존재하는 크고 작은 집안일들을 아예 안할수도 없다. 남편은 쉬라고 하는데 나는 가만히 쉬기가 어렵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다. 남편과 함께하기에 독박육아도 아닌데, 그렇다고 대단한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너무 쉽게 고단해지고 있다.
기억력 감퇴가 심각해졌다. 분명 남편이 이전에 해줬던 말들인데 기억을 못하고 또 물어보는 경우가 잦아졌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게 스스로도 느껴진다. 머리를 쓰는 일들이 귀찮아지고 힘들어졌다. 그냥 실시간으로 멍청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스트레스가 많아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일것이라 생각한다. 좋지 않은 악순환.
2. 정신 건강
- 무력감
출산 후 집에 와서, 온통 내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측할 수 없이 행동하는 아기도, 생각보다 확고하고 고집스러운 육아관을 지닌(나와 상당히 다른) 남편도, 내 몸도. 그동안 나름대로 내 삶을 스스로 관리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의 내 삶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현저하게 줄어들겠구나.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의지력도 약해지고 자꾸 스스로 작아진다고 여겨진다.
- 죄책감과 자책감
그 무력감의 기저에는 죄책감과 자책감이 깔려있다. 먼저 모유수유. 피곤하고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이유로 조리원에서부터 직수도 유축도 독하게 하지 못했다. 결국 현재 내 모유양은 현저하게 적고 자연스럽게 가슴을 빨아야 하는 아기는 내가 직수를 하려고할 때마다 짜증내고 힘들어한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또 아이에게 미안하고 부족한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렇다고 새벽 유축을 하자니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 제대로 하지 않을거면 그만 하는게 맞지 않나 싶으면서도 모유수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운 것 역시 동시다발적이다.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
첫 아이이기에 아이를 다루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실수가 잦은 편인데 나 자신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성격인 나로서는 '내가 엄마 자격이 있나' 싶어 자꾸만 자책하게 된다. 거기다가 내 이런 육아가 못미더운지 자꾸만 내 육아 판단에 입을 대는 남편과 함께 하고있자니(내 판단이 정답이 아닐 때도 있기에) 나는 더더욱 주눅이 들게 되는 것이다. 차리리 독박육아를 했으면 내 자존감이 덜 떨어졌을까? 벌써 아이를 보는게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고 겁이 나기 시작한다.
- 불안감
아이가 숨은 잘 쉬고 있는지, 소화는 잘 시킨 건지, 왜 우는지 정확히 알아야만 내 마음이 편해진다. 반대로 말하면 그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불안감이 지나치게 커진다. 특히 밤에 아이가 자지 않고 울면 '뭐가 불편해서 그럴까? 내가 뭘 잘 못해주고 있는거지?' 또 아이가 조용히 잘 자고 있을 때도 '얘가 왜이렇게 조용하지? 숨은 쉬고있나?'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결국 이불을 박차고 아이 침대로 한번 더 가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게 된다.
아이는 내게 너무나도 큰 변화이고
여전히 선물 같은 존재임은 분명하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귀한 것을 또 얻을 수 있을까 싶은 것 하나를 얻은 느낌이다.
내게 존재만으로도 기쁨을 준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고 잘 키우고 싶다.
그런데 동시에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또한 너무 많은 것 같다.
나는 초산이고 아직 육아 초입이라 그런걸까.
임신, 출산, 육아
누가 내게 어떤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지금은 이렇게 얘기하고싶다.
기쁨은 가끔 또 찰나이지만
고통은 자주, 그리고 길다.
이 기쁨이 고통을 이길만한 것인지는
나도 더 겪어봐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