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보는 거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가까이 하게 되는 사람이 있고 멀리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 마음에 드는 사람'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같은 시기, 같은 공간, 같은 이유에서 만난 사람들인데
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나 스스로에게 반문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좋은' 이유는 다양했다.
처음엔 그의 외모가 매력있어서
조금 더 만나다보니 그가 예의바른 사람이어서
가까이 지내다보니 그가 하는 작은 실수들이 인간적이어서
혹은 그의 취향이 나와 비슷해서
아니면 나와 다르게 사투리를 쓰는 것이 신기해서
또는 개그감이 충만한 사람이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등등
사실 누군가가 좋은 이유를 명확히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번엔 그 사람이 '좋지 않은'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하나 둘 생각하다가... 무릎을 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황당하고 이상하게도
내가 상대로부터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그가 '내가 부정적으로 여기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나의 행동과 동일한 행동을 할 때'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1.
지금 나는 뒤늦은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우리반을 맡으신 선생님께서는 카리스마가 없으시다. 다시 말해 아이들을 휘어잡지 못하신다.
선생님은 나름대로 학생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자 행했던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딱 그정도 수준의 선생님' 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결국 학생들을 원활히 통제하지 못하시는 모습을 본 후
나는 선생님이 답답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새 선생님에 대한 감정이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잠시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했었다.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초반부터 부드럽고 재미있고(?) 친근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고 덕분에 아이들은 내게 쉽게 다가왔지만 그만큼 지켜야할 선을 지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2.
학원 식당 주방장 아저씨는 친절하시다.
그런데 너무나도 명백하게 외모가 평균 이상인 여학생들에게만 유독 친절하시다.
이름을 부르고, 안 보이면 찾고, 간식이 나온 날은 몰래 한두개 더 챙겨주시고,
한 두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하신다.
어찌보면 어쩔수없는 인간의 심리라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 모습이 한심해보였고 짜증이 밀려왔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어느정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왔다.
항상 좀 더 예쁘고 멋진 사람에게 먼저 관심이 가고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여건이 된다면 그들과 친해지려고 했다.
외모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중에 상대의 외모는 나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던 것 같다.
3.
우리 반에는 아주 조용한 여학생이 한명 있다. 말도 행동도 느렸다.
우연히 학원내에서 중요한 일을 맡게되었는데
선생님께서 무언가를 시키시면
하기 싫다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말은 하지 못하고 어찌어찌 해나가던 아이였다.
그러다 어느날 그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감정을폭발하는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은 당황하셨고 사제간에 일어나기에는 썩 유쾌하지 않은 언행이 오고갔다.
'왜 저렇게 밖에 대처를 못할까? 자기 감정을 컨트롤하고 충분히 부드럽게 풀어갈 수 있지 않았나?
좀 더 차분하고 예의바를 순 없는걸까?'
부모님께서 어릴 때 내게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상대에게 네 표현을 잘해라."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학창시절 나는 정말 소심한 학생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건 베시시 웃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화가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삼키고 말았다. 그러다 쌓이고 쌓인 나의 감정이 엉뚱한데서 튀어나와 상대를 놀라게 한 적도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성숙했고 어렸고 부족했던 모습이었다.
나 자신을 많이 알지 못했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방법인지를 몰랐다.
다시 생각해보았다.
학원 선생님의 행동 하나 말씀 하나가
그렇게도 답답하고 화가났고 그래서 결국 괜시리 그 분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고 만 것은
과거 '선생님'이라 불리던 그 때의 나와 모습이 오버랩되어서이지 않았을까.
그저 "저 주방장 아저씨는 저렇구나"하고 지나칠 수 있는 일에
내가 이리도 예민했던 것은 혹시 내가 그 주방장아저씨의 '친절 학생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해서였을까?
그것이 마치 예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그랬던 것 처럼
이번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가치있게 여겨지지 못한다는 혹은
결국 나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은 아닐까.
평소 조용하던 학생이 선생님께 함부로 하던 그 모습에서
화를 꾹꾹 눌러참던 내가 언젠가 그것을 폭발시키고 부끄러워했던 그 당시를 떠오르게 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나에게 물어본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는 과연 그들을 그렇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것인지.
그들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싫은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