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armony Dec 20. 2017

26. 위로하기

당신의 불행으로 비추어버린 나의 행복

나에게 있어 2017년은

2018년의 찬란한 봄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해였다.

주변의 많은 것과 멀어지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애썼다.

하지만 2017년의 마지막 달력이 지나가기 직전인 지금, 내게 2018년의 찬란한 봄이 있을 거라는 희망은 꺼져가는 불씨처럼 작고 약해져 버렸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고 단지 나의 부족함, 나의 탓으로 인한 결과이기에 더 힘들었다.


음 그러니까.. 우울했다. 슬펐다. 허무했다. 화가났다. 억울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미웠다.

실은 지금도 진행중인 감정이다.

그런데 눈물도 나지 않았었다. 아니 한마디로 말하면 회피해왔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서 눈물을 흘리길 거부했다. 어차피 인정하고 풀어버리고 떨쳐버려야할 감정임을 내 머릿속 한구석은 알고 있으면서도 '울면 뭐해, 달라질건 없는데.' 하면서 우는 것 조차 부끄러워했다. 내가 울면 그 모습을 본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같이 마음아파 할 것임을 알기에 그게 너무 싫어서 더 감정을 숨기며 지냈다. 조금이라도 힘든 생각을 하게 되면 몸이 아파오고 마음이 아려오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닥치는대로 다른 일을 했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이고 또 타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딱히 생산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아픈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시간을 소모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찾았다.


가장 시간이 빨리 가는 일은,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는 것이었다.

웹툰을 보면서 거기에 집중하고 나도 모르게 웃는 일이 생기는게 좋았다.

남들 앞에서 괜찮은 척 하며 가식적으로 웃는 것 말고 짧게나마 정말로 웃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청각장애인 작가분이 그렸다는 웹툰을 보았다.

청각장애에 대해 진실되게, 때로는 어려웠을 이야기들을 따뜻한 웃음과 긍정적인 분위기로 승화시키는 너무나도 착한 내용의 웹툰이었다.

이상한 점은

만화에 녹아있는 유머에 웃기도 하고 청각장애인들의 고충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지금 처지에 대해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리가 잘 들린다는 점 하나가 이렇게 감사할 만한 일이구나. 나는 지금 너무나도 큰 축복을 받은 것 아닌가? 지금의 실패나 어려움이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것만큼 평생 불편하고 아파할 일인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나자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이건 어찌보면 청각장애인들의 불행을 거울 삼아 나의 신체적 건강함만을 가지고 자위하는 것 아닌가?'


이틀 전,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던 남자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팬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가수의 목소리와 감성을 좋아하는 편이었던 터라 깜짝 놀랐다.

그는 내 또래였고 유서를 보니 우울증을 앓고 있는 듯 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본인이 하고싶었던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멋진 외모와 실력으로 수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돈을 벌었을 사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서트를 했다던 사람. 그런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연예인이라하면 으레 '부모님 덕분에 좋은 조건의 외모와 능력을 지니게 된 사람들인데 돈까지 저렇게 많이 벌다니.. 연예인들은 정말 부모님께 감사해야해. 그리고 기부도 많이해야해. 세상 참 불공평하다'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큼 힘든 일이 무엇이었을까?

마음이 너무 약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아니, 자살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으론 강한사람이었을 수 있다. 아니면... 강하다고 생각하며 버텨왔는데 결국은 약하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왜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았을까? 모든게 본인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걸까?

오직 나만의 느낌일 뿐이지만 그가 느꼈을 감정이 지금 내 감정과 조금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정신과 병원에도 갔었다는 그는 삶을 가벼이 여겼던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그에게 충분치 않았을수도 있지만, 그가 주변에 아픔을 온전히 내비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이 어떻든 그 스스로가 자기자신을 위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라?'싶었다.

지금 내가 힘들어하고 있는 이유의 답을 찾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살아생전 만든 작곡하고 작사했다는 노래들을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노래였다. 계속 눈물이 났다. 위로가 되었다. 그가 만들었다는 가사들과 음율들이 듣는이에게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아.. 당신은 얼마나 아팠기에 아픈 사람들을 이토록 위로해줄수 있나요..

혹시 당신의 아픔에 비하면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닌거라 느껴질 만큼 아팠나요


나는 내가 내 아픔을 인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래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명백하게 내 아픔의 감정과 관련된 생각들은 내 머릿속 한가운데에 있었다.

무엇을 보고 읽고 듣든 그것을 내 아픔과 연결시켰고 위로받으려 했다.

특히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과 비교하면서 '이정도면 난 괜찮은 편이지.'하면서.

이것이 바람직한 위로법은 아님을 알고있다.

타인의 아픔의 크기를 내 마음대로 결정해버리는 오만한 행동이고

어떻게해서든 내게 유리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주관적인 판단이다.

솔직히 그런 생각부터해버린 내가 참 약았고 동물적이고 이기적이었음이 부끄럽다.

그런데

나 이렇게까지생각하면서

행복하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즐겁고 싶고.. 살고싶어하는구나

내가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길 필요도 있지 않나, 내가 나를 안아줄 필요도 있지 않나.


남과 나를 비교하고 함부로 그 아픔의 크기를 가늠하며 안도하거나 절망하기 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있는 그대로를,

잘못한 것 보다 잘한 것들을 칭찬해주면서,

부족한점은 인정하고 장점은 더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살아야겠다 싶다.

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에는 주변의 지지와 관심이 필요함 또한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정말 미안합니다.

내 마음대로 당신들의 아픔을 속단하고 또 이용해서.

당신의 아픔은 제가 감히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제 생각보다 크든 작든

그 아픔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사실은 저도 당신들처럼 살고 싶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당신은 적어도 한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감히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팠으니까요.

저도 위로받고 싶습니다. 저도 아프니까요.

남을 위로하고 나를 위로하며 살겠습니다.

사는 내내 아픔과 위로를 동반자 삼아서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나와 남의 아픔에 민감하고 진실된 위로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25. 내 생애 두번째 수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