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방문한 친정이었다. 아이들 방학 때 가고자 했던 워터파크에 방문하기로 하면서 일정을 마친 뒤 근처에 있는 친정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실내에 있었던 워터파크는 더위를 씻은 듯이 없애줬다. 하지만 새벽같이 출발해서였을까. 잠이 부족한 막내의 삐침이 계속됐다. 받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6시간을 넘게 물놀이를 하고 실외 수영장에서 모자도 없이 뜨거운 햇살을 받은 뒤 녹아내린 몸에 마음까지 질척이기 시작했다. '그만 좀 삐쳐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결국 아이에게 삐쳐버린 나는 처음에 워터파크에 발을 들일 때 휘어지던 입꼬리가 쳐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씻으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고 일단락했지만 열기에 달궈진 아스팔트처럼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친정에 도착했다. 토끼 같은 손녀들을 반겨주는 부모님에게 쌓아두었던 속내를 쏟아부었다. '얼마나 삐치는지 모르겠다'를 시작으로 하여 이러쿵저러쿵 엄마에게 털어놓으니 쌓여있던 짐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맞장구 잘 쳐주시는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말로 화답해 주셨다.
엄마는 육아 고민을 이야기하면 항상 말씀해 주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야, 정말 대단한 일 하는 거야. 아이는 잘 봐야 해. 엄마니까 더 많이 사랑해 주고 잘한다고 얘기해 주고 네가 엄마로서 아이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줘야 해"
육아를 하는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시는 엄마의 말에 일단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해 나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 알게 된다. 많이 사랑해 주고 아이 편에 서서 든든하게 지지해 주는 역할이 내가 해 나가야 할 일이라는 것을 새긴다.
일요일 새벽 5시 배추를 심기 위해 부모님과 길을 나섰다. 엄마가 타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말리신다. 위험해서 엄마밖에 못 탄다며 만류하는 아빠와 트럭에 앉아 앞서가는 엄마를 봤다.
"와 우리 엄마 자전거 잘 타시네"
"그렇지? 엄마 베스트 드라이버야~, 저게 엄마의 낙이잖아"
두 발 자전거를 탈 줄 몰라 아빠가 태워주시는 자동차 외에는 두발이 유일한 엄마의 이동 수단이었다. 하지만 무릎이 좋지 않아 많이 걷지 못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힘이 덜 들고 균형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전기 자전거를 선물해 주신 거였다.
밭에 도착해 무씨를 뿌리고 배추를 심었다. 다음 주에 심으려 했으나 사람이 하나 더 있을 때 하자며 아빠가 일주일 앞당겨 서두르신 것이다. 아빠가 구멍을 파주면 엄마가 흙을 눌러 땅을 움푹 파이게 하면 무씨를 3개씩 뿌려주는 일을 했다. 흙을 얇게 덮으니 두더지가 지나간 것 같은 구멍 80개가 늘어서 있었다.
무를 다 심고 배추를 심다 보니 모종이 부족해 아빠는 트럭을 몰고 시내로 나가셨다.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배추를 심는 시간이 참 좋았다. 흙을 만지며 겨울 내 먹여야 할 배추를 심어내는 일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밀린 이야깃거리를 거름처럼 쏟아내며 쉬지 않고 웃고 떠드는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눈치 없는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트럭을 끌고 시내에 가셨고 밖에서 볼 일을 볼 수 없으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탈 줄 아니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전기 자전거는 약간 삐뚤은지 중심 잡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무사히 집에 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하셨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때가 돼서야 운전 방법을 알 것 같았다. 너무 세게 구르면 확 튀어 나가는 전기 자전거에 중심을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야 한다는 걸 체득했다.
돌아가는 길은 상쾌했다. 시원하게 비어낸 장 때문인지 자전거에 숙달되어 볼을 스치는 바람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밭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하지만 차가 뒤에 있으면 불안하니 트럭을 쫓아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먼저 출발하라고 하신다.
"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가 뒤에서 봐주다 도와줄 수 있잖아"
이제 숙달돼서 괜찮다고 했지만 부모님의 한마디에 페달에 발을 올리고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갈 때 운전에 더 집중하지 못한 건 뒤에 차가 따라올까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외길을 백미러도 없는 자전거를 운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충을 아신건지 외길에 넘어질까 혹은 차가 위에서 크렉션이라도 울리까 걱정된 부모님이 지켜봐 주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갈 때 나는 항상 앞서가는 편이다. 걸음이 느린 아이들은 나를 쫓아오기 바쁘다. 엄마 오리를 뒤 쫓아가는 형상보다 아이들은 더 뒤에 쳐져서 따라오기 바쁜 편이다. 학습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어서 오라고 앞서서 재촉하면 겨우 따라오기 바빠 보이는 아이들에 내가 지칠 때도 있다. 커 오면서 부모님은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하신 적이 없었다. 그저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시고 칭찬과 고생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하느라 애썼어 우리 딸"
씽씽 달려 1등으로 도착해 화장실로 갔다. 밭에 안개가 자욱했지만 흐른 땀이 등을 타고 내려올 정도로 더웠다. 수고로운 밭일을 씻어내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찰나 화이트보드에 눈길을 끄는 세 문장이 있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엄마가 쓰신 글씨체였다.
할 수 있어요.
와 정말 대단한데요.
다 잘 될 것 같아요.
머리를 세차게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며 커왔고 살아왔던 내가 요즘 왜 그렇게 무기력하고 모든 것에 부정적이었을까. 노력하면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모든 잘 될 것이라고 핑크빛으로 미래를 그리던 내 손에 회색 물감이 짙게 뭍은 붓을 들고 내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작은 일에도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현재에 열심히 살아왔는데 깊은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말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었지만 엄마의 손글씨로 써졌기 때문에 내 마음에 돌멩이가 던져져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엄마가 해주는 말씀이니까.
워터파크에서 쌓였던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고 화이트보드에 쓰여있던 엄마의 세 말이 남았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대단하다. 다 잘 될 것이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볼 것이다. 육아도 나의 꿈도 뭐든 할 수 있다고 다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