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엄마의 딸이다

by 친절한금금

"엄마, 외할아버지한테 사진이 왔어"


손녀들에게 AI로 만든 그림을 친정아빠가 보내셨다. 사진에는 손녀와 둘이 찍은 사진도 있었지만 눈길을 끄는 건 엄마와 내가 나온 사진을 그림으로 바꾸신 거였다. 거기에 더해 아이들의 사진까지 합해서 친정아빠가 사랑하는 네 명의 여자가 한 그림 안에 있었다. 최근에 노트북을 사시면서 유튜브로 공부를 열심히 하시더니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에 눈을 뜨신 것 같다.



그러더니 엄마에게도 새로운 신문물을 소개해주셨나 보다. 엄마는 개인 카톡으로 엄마가 바꾼 사진을 나에게 보내셨다. 손녀들을 워낙 이뻐하셔서 당연히 손녀들 사진이겠거니 했는데 내가 나온 사진을 그림으로 바꾸셨다. 남편 없이 친정부모님과 갔던 일본 여행에서 부모님은 서로의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나의 사진도 열심히 찍으셨다. 아이들 사진을 찍는 게 익숙해 내가 사진에 찍히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엄마 아빠가 꽤나 내 사진을 잘 찍어 주셔서 놀랐었는데, 그림으로 바꾼 것 역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더군다나 엄마가 AI를 이용해서 처음 한 것이 내 사진이었다니.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모님의 딸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사진을 주고받던 금요일이었다. 아이들을 못 본 지 오래돼서 보고 싶어 하시는 걸 알지만 주말에 이동이 힘들 것 같아 친정 가는 일정을 미루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에게 전화가 왔다.


"주말에 어디 가니?" 친정 아빠가 물으셨다.


그리고 일요일 주말 아침 일찍 친정 부모님이 오셨다. 부리나케 오신 이유는 갓 담근 오이소박이를 가져다주기 위함이었다. 지난번 통화에서 버스로 주시면 감사히 잘 먹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서 김치를 담그고 아빠와 함께 가져다주신 것이다. 김치를 주시며 혹시 사위가 들을까 봐 소곤소곤 말씀하신다.


"이거 시댁식구들 올 때 상에 내놔, 반찬 하려면 힘들잖아"


시댁 식구들이 방문하면 남편이 주로 음식을 한다. 남편이 한 김치찌개와 내가 된장 혹은 순두부찌개를 하면 식사에는 무리가 없는대도 엄마는 며느리가 차린 상에 반찬이 혹여 없을까 봐 걱정이셨나 보다. 쪽갈비와 갈비를 맛있게 익힐 수 있는 압력밥솥까지 챙겨 오실 줄이야.


정갈하게 말아진 파김치까지 싸 오신 엄마에게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토요일까지 근무를 하셔서 하루밖에 쉬지 못하시는데도 오히려 새벽 4시에 일어나 염색하고 김치를 담그며 오늘 하루를 부지런하게 보낸 자신을 칭찬하셨다.


식사 후 잠시 아이들과 나의 일상을 보시며 엄마는 적잖이 놀라셨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나를 대하는 태도에 걱정이 되신듯하다. 그러면서도 하시는 말씀이..


"아이들이 엄마가 제일 편하지... 엄마가 기댈 곳이 되어주는 거지.. 그래도 우리 딸이 애들 키우면서 힘들겠다"


다 같이 영화를 보다가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힘들어서 어쩌냐고 했다. 주말까지 일하는 엄마도 많이 힘들겠다고 한마디 더했다. 그런데 엄마의 말씀이..


"누구나 다 힘들지. 엄마는 엄마의 노후를 위해서 엄마의 일을 하는 거고... 지금 우리 딸은 엄마로서의 일을 하면서 힘든 거고... 네 딸들은 하기 싫은 공부 하면서 힘든 거고... 각자 자신만의 힘듦이 있는 거야. 잘 해내고 있는 우리 딸 기특해"


마지막에 기특해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들렸다.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엄마의 말과 인정의 말씀들이 사춘기 아이를 키우며 방황하는 엄마로서의 나의 길을 잡아주셨다.


AI로 바꾼 그림이 모두 이쁜 건 아니었다. 어떤 사진은 내 얼굴이 너무 못나게 나와서 별로라고 말했다. 영상통화를 하던 부모님은 "그래도 이뻐"라고 하셨다. 어떤 모습이든 이쁘게 봐주는 부모님. 그래 이거였지 싶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날 선 나를 무디게 만든 따뜻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