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함께 춤을

남겨진 리듬을 사랑하는 법

by 이고운

이십 대의 이별이 무대 위에서 엉엉 울며 막을 내리는 비극이었다면, 서른이 넘은 뒤 마주하는 이별은 관객이 다 빠져나간 뒤 텅 빈 공연장에 홀로 남아 먼지 섞인 조명 빛 아래를 서성이는 일에 가까웠다. 소란스럽던 음악은 꺼졌고, 함께 스텝을 맞추던 파트너의 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적막 속에서 비로소 나만의 리듬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별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정전 같은 것이어서, 처음에는 그저 암흑 속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돌던 관성에 길들여진 몸은 자꾸만 허공을 휘젓는다. 있어야 할 손이 없고, 받쳐줘야 할 허리가 비어있을 때 느껴지는 그 지독한 불균형. 그것은 이별이 주는 가장 원초적인 통증일테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어둠 속에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보기로 했다. 음악이 없으면 어떠랴.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박자가 되고, 발바닥이 마룻바닥에 닿는 마찰음이 멜로디가 된다. 파트너의 리드에 맞춰 억지로 보폭을 줄이거나 늘릴 필요도 없다. 오로지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내가 견딜 수 있는 속도로 움직이는 법을 다시 배운다.


이별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상실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그 시린 부재를 기꺼이 내 춤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일이다. 슬픔이 밀려오면 몸을 낮춰 깊게 수그렸다가, 그리움이 차오르면 발끝을 세워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다. 가끔은 중심을 잃고 휘청이기도 하지만, 그 비틀거림조차 이제는 하나의 우아한 변주처럼 느껴진다.


서른이 넘어서부터의 이별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귀한 의미는 '홀로 추는 춤의 충만함'이다. 타인의 박자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얼마나 많은 스텝을 낭비했었나. 누군가와 함께여서 가능했던 화려한 턴보다, 지금 혼자서 내딛는 이 투박하고 정직한 한 걸음이 훨씬 더 나답다는 것.


이제 나는 안다. 이별은 내 삶의 무대에서 조명이 꺼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비추는 핀조명 하나가 새로이 켜진 것임을. 비록 무대 위엔 나 혼자뿐이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그리고 단단하게 이별이라는 동반자와 함께 춤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랬던 그 음악은, 그 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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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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