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모든 전등을 끄고 오직 스탠드 하나만 켠다. 딸깍.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진동이 허공으로 번지면, 비로소 나의 세계는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것. 이 빛은 빛이라기보다 차라리 끈적한 액체에 가깝다. 날 선 마음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주고, 와르르 무너져 내린 하루의 잔해들을 포근한 솜이불처럼 넉넉하게 덮어주는 그런 종류의 환대랄까.
나는 이 오렌지색 불빛의 지독한 신자다. 하얗고 정직한 형광등 아래서는 내 모든 결점이 낱낱이 해부당하는 기분이 들지만, 이 낮은 채도의 빛 아래서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기꺼이 빠질 수 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삶이야’라고 스스로를 속여 넘기기에 딱 좋은 조도. 빛이 닿지 않는 방구석의 먼지나 정리되지 않은 서랍 같은 건 슬쩍 어둠 속으로 밀어 넣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비겁한 아늑함이 이곳엔 있다.
의자에 엉덩이를 깊숙이 묻고 앉아 가만히 빛의 입자를 응시해 본다. 주황색 불빛이 방 안의 공기를 몽글몽글하게 부풀려 놓으면, 비로소 멈춰있던 나의 심장도 조금씩 제 박동을 되찾기 시작한다. 이건 일종의 심폐소생술이다. 무기력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영혼에 온기를 불어넣어, 다시 문장을 짓고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상태로 되돌려 놓는 은밀한 복구 작업.
사실 내 창의성의 팔할은 이 조명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주황색 불빛 아래서 쓴 글은 밤의 냄새가 나고, 낮의 소란스러움을 견디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빛이 닿는 곳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나만의 비밀스러운 요새를 만들어줄 때, 나는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다. 세상이 요구하는 규격화된 밝기에서 벗어나, 내가 정한 명도와 채도 속으로 완전히 침잠하는 행위야말로 나를 향한 가장 지극한 예우가 아닐런지.
스탠드 갓 근처에 손을 슬쩍 가져가 본다. 미지근하게 달궈진 공기가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이제 이 빛을 연료 삼아 오늘치 글을 쓱쓱 적어 내려가야 할 시간. 거창한 희망은 없어도 좋으니, 딱 이 조명이 허락한 반경만큼만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로 마음먹는다.
주황색 불빛이 나를 비추고 있는 동안만큼은, 무너짐조차 하나의 근사한 풍경이 된다는 걸 안다. 심폐소생은 끝났다. 이제는 다시 살아갈, 혹은 다시 써 내려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