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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Nov 01. 2020

[그때 그 상처가 영원히 나를 지배할 줄 알았어]

마음속 깊은 상처에 관한 착각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 본 기억이 있니? 

그것도 갑작스럽게. 아주 딥~하게. 


고등학교 때 겪은 왕따의 기억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그리고 너무나 처절했던 것 같아. 


그리고 그때의 후유증이 남아 

대학교 1, 2학년 내내 나를 아웃사이더로 만들어주었어.      


“외톨이야~외톨이야~따라띠리빠라 뿡~~” 

술에 취해서 (나의 본질은 푼수) 이런 노랠 부르면서 20대 중반까지 내내 자주 괴로워하고, 

20대 말경에는 급기야 이때 이야길 종종 꺼내며 울다가 웃기도 했어. 


다행히 객지에서 사귄 나의 20대 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웃어주는 아이들이었어. 

고향도 다들 재 각각이고, 몇몇은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도 해서 같이 울었어. 

(아... 진상들...)


내가 왜 왕따가 되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 '그 아이들이 나빴다'거나 ,'당시 왕따가 유행이었다'거나, 

'내가 잘 못 걸린 거다'라며 합리화를 시킨 적도 있었어. 


그러나 나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속담이 있었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정말 찔리는 속담이야. 

그래서 내 스스로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었어. 

심리학 책들도 읽어가며 사람과 사람에 대한, 관계에 대한, 

집단행동에 대한 여러 가지들을 배우려고 노력했어.     


맘껏 아파하고 일단 아파하고 무작정 아파하던 내가 

그 아픔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 자체가 난 이미 상처에서 벗어나고 있었단 증거겠지?     


정말 정말 벗어나고 싶어서 술을 마셨고, 

때로 운동을 했고, 때로 먹어대고, 때로 신나는 EDM을 들었지만 

결론은 ‘근본적인 효과가 없다’.     


정면 돌파는 너무도 지독하게 아플 것이란 겁이 났었지. 

그렇지만 이내 그 아픔을 주변에 털어놓았고 주변은 내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어. 쉽지 않았을 거라며...     


그리고 알게 되었어. 알고 봤더니 다들 비슷하거나 약하지만 

얼핏 그런 류의 상처가 있었단 것을... 


미움은 나만 받는 종류가 아니라, 

누구나 받는 종류의 감정이었다는 것을...     


그 뒤로 마음을 ‘단디’ 먹으며 공부를 좀 더 해봤었어. 

때로는 내 경험을 이론에 대입하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지만, 

제법 담담해지는 일종의 치유의 기분도 들었어. 

결국. 나도, 그들도 사람이라서 그렇단 사실에. 

내가 다르지 않은 흔한 사람이었단 사실에.     


나의 어린 시절 내성적임, 조금 배타적이던 나의 내면은 

우리 집안, 부모님, 형제 등으로부터 비롯되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어. 

‘내가 원래 그렇게 타고나서 그렇다’의 자책이 줄어든 거지.     


그 시절 힘겹게 전투적으로 살아왔던,

남에게 마냥 따뜻하거나 겸손할 수 없었던 집안 어른들에게도,

말이 없고 자주 생각에 잠기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도... 

이제는 원망이란 단어를 부여하지 않아. 


이제 내 상처는 더욱 철저하게 ‘추억’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어.      

나는 앞으로도 자꾸만 공부하고 싶어 져.

우리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서...





(c)2020. GO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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