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들
일요일은 오후 세 시간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 자리 잡고 노트북 올리고 커피 마시고 이제 막 글을 써 내려가려는데 자꾸 눈에 거슬린다. 이 주 전에 만났던 브라질 엄마다. 무슨 궁금한 이야기가 많은지 선생님과 계속 마주 서있다. 거기에 끼지 않으려고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복도 의자에 앉아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림 수업이 끝난 후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누나형들하고 웃고 있었다. 너무 시끄러웠던 탓인지 경비 아저씨가 애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게 보였다. 나도 덩달이 나갔다. 거기서 그 엄마를 다시 마주했다. 한동안 몸이 안 좋았다며 목소리가 깔끔하지 않았다. 따뜻한 햇볕도 좋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 조그만 잔디밭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내심 자리로 돌아가 나머지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쳤다.
이 엄마가 말문이 트인 거다. 어린 둘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쭉 펼쳐놓는 걸 보니 두바이 생활에 적응했구나 싶었다. 약간 지루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노르웨이로 간다는 말을 툭 던졌다. 원래 두바이로 오려던 게 아니었단다. 노르웨이에서 단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연기하다 보니 아이를 낳은 후 우선은 일단 두바이로 오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첫째 아이가 학교를 3번 옮기는 동안 프랑스어, 아랍어, 영어를 배웠다 한다. 그 아이는 포르투칼어가 주언어이다. 노르웨이 가면 그 나라 말까지 배우게 될 거라며 이 엄마는 표정이 기대반 걱정반이다. 은행업무, 차량등록, 집 구하기, 학교 등록 등등 외국인으로서 해야 하는 환경세팅을 노르웨이 가서 또 해야 하는 거다. 약간 낙담하는 듯 보였지만 한차례 겪은 일이고 하니 다음번에는 나을 거 같다는 자신감도 보인다. 워낙 엑스팟(expat, 외국인 거주자) 이 많은 곳이라 해외 이주가 흔한 일이다. 그래도 지내온 곳을 떠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친구가 이어서 하는 말속에 안타까움이 엿보였다. 지금 에서야 두바이에 적응해 친구도 사귀고 생활이 안정이 되었는데 시행착오가 적었다면 더 좋았겠지 하면서 말이다. 본인의 살아있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열의가 느껴졌다. 새로운 환경에 다시 익숙해지기까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친구와 이웃을 두고 새로이 일상의 즐거움을 찾고 루틴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 않아서이다.
실은 나도 그랬다. 하나부터 열까지 불편하고 딱히 재미도 없었다. 누구랑 이야기할 수도 없고 친구를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상황이었다. 아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엄마들과 왕래도 하고 만나 웃고 이야기 나누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 해외 생활에 적응하고 내게 편안함 사람과의 거리를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기서 만난 여러 사람들은 두바이 그리고 그다음 나라로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학교에서 만난 일본엄마도 겨우 2년 정도 지내고는 적응할 만하니 싱가포르로 가버렸다. 여기서 본인 사업을 하지 않는 한 직장인들은 다른 나라로 옮겨 다니는 경우가 꽤 많다. 일 년 만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깐...
그녀는 이제 준비가 된 거 같다. 어느 곳에서 다시 시작하더라도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두바이다.
프랑스에서 만난 국제커플이 결혼을 앞두고 살 곳을 정할 때 세 군데가 있었다. 미국, 호주, 그리고 UAE 두바이다. 인종차별과 교육환경을 알아본 후 UAE 두바이로 정했고 지금껏 십년 넘게 만족하고 있다. 어디 가서 지냈던들 잘 살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것을 여기 지내는 사람들은 똑같이 느낀다. 외국인이 살기 좋은 곳, 서로의 문화가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점에서 새롭다. 두바이는 철저히 계획하에 세워진 인공 도시지만 지금 두바이의 매력은 따로 있다. 두바이는 낯선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 수밖에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