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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Apr 11. 2021

지시하지 말고 질문하라.

보고서를 만들지 말고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라.

인터넷과 스마트기기 덕분에 우리는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고, 앉은자리에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는 정보를 얻고자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모든 것이 검색으로 통한다. 

그럼 정보가 넘치고 얻고자 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어 우리들의 삶이 여유롭고 좀 더 풍요로워졌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만큼 일은 더 많아지고 보고서는 더 두꺼워졌다. 정보의 양과 보고서의 양이 비례하고 보고서의 양은 작업하는 시간과 비례한다. 그뿐 아니라 책상에서 작업하는 시간과 현장의 간극도 비례해서 벌어지면서 고객과의 거리도 점점 멀어졌다. 결국 넘치는 정보로 인해 필요 이상의 정보가 보고서에 담기고, 보고서의 양은 많아졌지만 보고서에서 고객이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보고서에 고객이 없는 기업은 위험해진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2D 영화만 만들고 3D 영화는 만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요즘 영화들은 과잉이다. 과잉으로 세밀하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요즘 TV를 보지 않는 것도, HD TV라서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다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는 “단편영화를 제작하는데 대사를 빼고 빼고 하다 보니 무성영화가 되어 버렸는데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다. 아주 속이 후련했다”라고 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양이 질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른 과잉의 시대를 질책하는 듯하다. 마치 물질의 과잉이 비만을 만들고 비만이 질병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바쁘다고 핑계만 대지 말고 책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료를 찾고 검색하여 보고서를 만드는 수고를 줄이고 직접 현장에 찾아가 고객을 관찰하고 만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복잡성은 조용한 암살자다’라는 말이 생겼다. 복잡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성으로 인해 구성원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본질이 흐려지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렇다 보니 선진 기업들의 CEO들이 앞장서 단순화를 강조하고 있다. 

P&G의 전 회장 앨런 조지 래플리는 전략에 대해 말할 때 ‘현실을 직시하고, 전략에 대한 설명은 1페이지 이내로 줄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을 없애고, 대화 중심으로 토론을 하도록 했더니,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왔다고 한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도 “조직이 커지면서 중요하지 않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단순화는 직원들이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맞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함께 하도록 돕는 도구다. 단순화는 조직을 더 날렵하게 만들고, 관료주의를 없애며, 시장에 완전히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했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사내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6쪽 분량의 메모로 사안을 묘사하라”라고 했고, 페이스북의 최고 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역시 “나와 미팅할 때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마라”라고 했다가 지켜지지 않자 전면 금지했다. 

우리 기업들도 형식적이고 과도한 보고로 인해 비생산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전체 근무시간 중 무려 31%나 차지한다고 한다. 이런 형식적인 보고 문화로 인한 비효율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보고 문화를 바꾸기 위해 ‘제로 파워포인트’ 캠페인을 실행하고 있다. 회사 컴퓨터로 PPT를 만들 수 없고, 보고할 때도 PPT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결과 보고서는 한두 장으로 짧아지고, 회의 시간도 짧아졌으며, 직원들의 평균 퇴근 시간을 23분 앞당기고 휴가 일수는 10%나 늘리는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정태영 현대카드 CEO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연필과 노트북 하나 들고 낙서해가며 하면 훨씬 더 자유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간다”며 제로 파워포인트 효과를 설명한다. 특히 파워포인트는 정보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디자인적인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보고서의 가독성을 높이는 디자인이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성공하는 기업은 보고서보다 고객 경험에 집중한다. 최근 코로나 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 중 하나가 여행과 숙박업이다. 대부분 이 기업들의 매출은 10분의 1로 줄어들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업이지만 에어 비앤비는 상반기에 9억 3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가 3분기에 2억 1900만 달러로 흑자 전환하였다. 에어 비앤비는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흑자 전환을 했을까? 

에어 비앤비의 성공 비결은 바로 빠르고 민첩하게 시장 변화에 대응하며, 새롭게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에어 비앤비는 2008년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과 에어 비앤비 브랜드 경험을 매력적으로 조합해 여행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에어 비앤비는 ‘여행은 가까운 곳에서’라는 콘셉트로 고객 경험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기간 집을 빌려 일하는 ‘워케이션’(재택근무+휴가)이나 학생들이 학습 목적으로 단체로 집을 빌리는 ‘컬 랩 하우스’, 제주에서 한 달 살기와 같이 새로운 트렌드에 맞게 고객 경험을 디자인한 것이다.  

일본의 호시노 리조트도 코로나로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해지자 ‘마이크로 투어리즘’이라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이란 집에서 한두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는 일종의 근교 여행을 말한다. 기존의 근교 여행과 비슷하지만 핵심 조건은 개인이나 가족 등 적은 인원이 도보, 자전거, 자동차 등을 이용해 1~2시간 내외로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 위험을 최대한 줄인 여행이고, 혹시라도 감염 증상이 있으면 집에 바로 돌아오면 되기 때문에 불안감도 줄일 수 있어 코로나 19 시대의 여행은 마이크로 투어리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고객들이 시설의 방역 수준이나 밀집도를 가장 걱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리조트 내 철저한 방역 수준을 알리고 온천 등 시설물의 밀집도를 실시간으로 알리는 앱을 만들었다. 이 상품이 알려지자 마치 마법처럼 지역 주민 관광객들의 예약이 늘면서 호시노 리조트의 예약률은 전년 수준을 회복했다고 한다. 호시노 리조트도 보다시피 철저하게 고객 관점에서 경험을 디자인한 결과다.     

두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분석하고 보고하고 의사결정을 받아 시행한 것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욕구를 발견하고 적합한 경험을 디자인해 실행했다는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가 다르듯 서비스와 고객 경험도 다르다. 이제 고객은 평준화된 품질의 상품이나 정형화된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독특한 생활양식과 제품을 사용하면서 얻게 되는 총체적인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타벅스 커피가 맛있어서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객들은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문화를 경험하러 가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분위기, 만남, 대화를 중시하는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스타벅스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전 매장에 콘센트와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고객의 취향이 다양해지자 사이런 오더에 나만의 음료 만들기 기능을 추가하여 샷, 시럽 추가, 물과 얼음량 및 휘핑크림 조절 등 수백 가지의 조합이 가능한 경험을 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나 타인의 접촉을 꺼리는 ‘언택트’,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워라밸’, 나만의 공간을 찾는 ‘케렌시아’ 등에서 보이는 ‘나’를 찾는 트렌드도 스타벅스와 함께 했다. 이렇게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집과 직장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제3의 공간으로 인식되도록 했다. 이제 누가 먼저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느냐가 시장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고객 경험 디자인에 앞서가는 기업들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간파하고 충족시키는 능력이 남다르다. 그들은 고객의 말을 귀담아듣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을 찾아내고, 고객의 의도에 정확히 반응한다. 사실 고객은 언제나 자신들이 원하거나 불편한 것을 표현하지만 그것을 감지하거나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객의 기분을 느끼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도 아침의 기분, 점심의 기분, 저녁의 기분으로 나누는 것처럼 고객의 기분을 느끼고 공감해야 한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되어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공감은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한다.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관찰과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먼저 찾으려 하고 아이디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객을 관찰하지 않고 찾은 아이디어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다. 그러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먼저 고객을 관찰하고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질문해야 한다. 이때 질문이 회사의 입장과 고객의 입장을 함께 반영하면 안 된다. 회사의 입장과 고객의 입장이 같을 확률은 희박하다. 고객의 마음만 가지고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옳다고 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고객이 언제나 옳다. 이것이 리더가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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