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가. 가끔씩 예능 작가들이 본인의 일을 자조적으로 말할 때 쓰는 용어다. 소품, 촬영 장소, 출연자 등 작가가 촬영장에 신경 써야 될 것이 많다. 대본만 잘 적는 것으로 절대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이 중 하나라도 변수가 생기면 촬영 중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한 번은 스포츠 예능 촬영이 있었다. 탁구 레전드 국가대표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탑 MC들이 함께하는 녹화에서 함께 탁구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출연자, 스튜디오, 탁구대, 탁구공, 탁구네트까지 준비를 마치고, 녹화 시작만을 기다렸다. 녹화 5분 전, 스태프 한 명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탁구채는 어디 있죠? 이 말을 들은 선배 작가들은 후배 작가한테 얼른 탁구채 들고 오라 말하고, 후배작가는 그 후배작가한테 탁구채를 들고 오라 말했다. 후배의 후배의 후배의 후배 작가까지 명령이 전달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아무도 탁구채를 준비하지 못했다. 명백히 작가들의 실수였다. 소품 리스트까지 만들며 더블체크하는 작가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다들 어디엔가 씌었나 보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5분 안에 탁구채를 구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역시 항상 그렇듯 죽으란 법은 없다. 항시 본인의 개인 라켓을 소지하던 국가대표 선수가 MC들을 위해 자신의 탁구채를 빌려주었다. 결국 녹화 중 MC들이 국가대표의 탁구채를 번갈아 사용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MC들은 "언제 제가 국가 대표 라켓으로 탁구를 쳐보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탑 연예인의 센스를 증명해 냈다. 하지만 내 선배 작가는, 그 선배 작가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과했다. 나도 물론 선배한테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무능함을 증명해 냈다. 좌절했다. 당시 난 경력 6년 차 작가였는데,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6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예능작가로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 절대 실수에 매몰되어서 안 된 다는 것이었다. 내 실수 때문에 선배가 화를 내고, 출연자가 짜증 내고, 대형 방송사고가 나더라도 촬영 현장에서 절대 그 실수를 다시 돌이켜서는 안 된다. 내가 탁구채를 준비 못한 실수에 빠져있다가는, 이후 MC들이 할 게임, 토크들을 다 놓치고 만다. 작가들이 긴장을 바짝 하고 스탠바이를 해야 다음 소품을 가져다줄 수 있고, MC들이 토크 포인트를 놓치지 않도록 모니터로 지시할 수 있다. 한 번만이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다음 구성들이 다 어그러진다. 촬영도 마치 탁구 경기 같다. 이전 실수에 매몰되면 실점으로 이어지고, 결국 경기에서 대패하고 만다.
실수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나도 사실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크레파스 하나가 부러지면, 그렇게 짜증이 났다. 크레스파스통을 열어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깨끗한 크레파스에 내가 몹쓸 짓을 한 것 같았다. 작가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완벽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선배들이 말하기 전에 눈치로 착착 준비하는 촉망 받는 후배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몰아쳤기 때문에 작은 실수에도 얼굴이 빨개지고 내 완벽한 커리어에 금이 가는 듯 절망했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존재인 것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고, 사실 아직 어렵다.
최근 모임 플랫폼인 <문토>에 평점 기능이 생겼다. 모임을 연 호스트에게 자신의 만족도에 따라 별점을 매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부분 참가자들은 모임 동안 호스트와 정을 쌓았기 때문에 5점을 준다. 그렇게 나도 4명의 참가자들에게 5점을 받았다. 하지만 곧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참가자 한 명이 글쓰기 모임에 4점을 준 것이었다. 화가 났다. 내 완벽한 5점짜리 리뷰에 4점을 준 참가자에게 화가 났다. 그 참가자는 사실 모임 전에 사정이 생겼다고 전액 환불을 요구한 참가자였다. 당시 나는 규정상 환불이 안 된다고 최대한 정중히 말씀드렸다. 그 일 때문에 앙금을 가지고 4점을 준 건가? 아님 글쓰기모임이 술 마시며 어울리는 파티모임이라도 되는 줄 알고 실망한 건가? 별의별 나쁜 생각이 다 들었다.
헬스장에서 별점 4점을 받고, 분노의 벤치프레스 4세트를 내리꽂았다. 숨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맑아지자, 상황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4점은 사실 그렇게 나쁜 점수가 아니다. 오히려 좋게 볼 수도 있다. 5점 만점에 4점이면 나를 칭찬하고, 내 모임을 칭찬한 것 아닌가? 왜 나는 4점이란 높은 점수에 이렇게 화가 났던 걸까.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내 완벽주의 때문이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하려 욕심부렸기 때문에, 4점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참가자가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용기를 내서 글쓰기 모임을 오고 4점을 준 거면 내 모임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참가자가 나름 극찬을 한 걸 수 도 있는데, 내가 부정적인 스토리텔링을 해버린 것이다.
같은 날 <넷플연가>라는 모임 피드백에서도 피드백을 받았다. '중간 부분이 지루했어요'라는 익명의 피드백이었다. 순간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명색 내가 예능 작가인데, 지루한 부분을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예능 작가의 노하우가 총집합된 완벽한 모임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게 지루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방송일을 하며 배운 교훈을 끌어왔다. 퍼뜩 좌절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실수, 실패에 매몰되면 안 된다. 이전의 악수에 최대한 빨리 나오고 정상 궤도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인정해야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절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실수에서 빠져나오면 상황이 보인다. 그때부터 부족한 점을 빠르게 개선시킬 수 있다. 넷플연가는 12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진행하는 모임이다. 12명의 사람이 번갈아 한 명씩 말하게 한 게 나의 잘못이었다. 1명이 말할 때는 11명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긴장감과 몰입이 전혀 없는 진행방식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중간에 제지해 주고, 이야기를 듣는 나머지 사람들도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제 내 다음 모임은 이전 모임 보다 발전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세 번 되뇌고, 4점짜리 리뷰에 답글을 달았다. 소중한 별점 너무 고맙고 와줘서 너무 감사하다 말했다. 처음에는 마뜩잖게 답글을 적었지만, 적다 보니 정말 감사한 듯하다. 완벽하지 않은 나에게, 완벽하지 않은 내 모임에게 2만 5천 원이라는 거금과 시간을 투자해 준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