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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May 21. 2024

작가가 하는 게 뭔데?

예능 작가는 마치 카멜레온과 같다. 일을 잘하면 잘하는 잘하는 작가일수록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리얼'을 강조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작가는 본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야 한다. '전지적 참견시점', '나혼자 산다'에서 출연자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본 사람들이 작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면 작가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A라는 출연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A의 일상에 관해 인터뷰를 해야 한다. 인터뷰를 하며 깨닫는다. 사실 대부분의 연예인이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A는 평상시 집에 있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하러 간다. 그렇다면 A의 일상이 흥미롭게 보이도록 많은 방송적 장치를 넣어주어야 한다. 평소 먹방으로 유명해진 A라면 A만의 맛집을 소개해주어도 되고, A와 친한 유명 연예인과 만남을 보여주어도 된다. 또는 A 집의 내부를 공개하며 성공한 연예인 이미지로 관심을 끌어도 되고, A의 이미지에 맞는 트렌디한 액티비티를 도전하게 해도 된다. A의 일상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대본 작업이 끝난다면 구성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 A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한다고 하면 필요한 각종 재료를 주문해야 한다. 또한 A가 촬영할 장소에 미리 협조를 구해야 한다. A가 평상시 가는 곳이 촬영 협조에 응해주면 좋지만, 응해주지 않는다면 대안을 알아봐야 한다. A의 지인도 섭외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이라면 출연료, 촬영 시기 등 조율 과정이 복잡하고, 일반인이라면 방송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얼리티 예능에 작가의 개입을 찾기 힘들다면, 작가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말이다. 적재적소에 모든 구성을 괴리감 없이 녹여냈고 모두를 납득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능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면서 출연자들의 매력을 백 프로 발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모임 플랫폼인 <문토>에 도전하기 전 유명 호스트에게 관련 강의를 들은 적 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 중 한 가지가 인상 깊었다. '호스트는 마치 연예인과 같다'는 말이었다. 인기가 많은 호스트는 자신의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본인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호스트를 팔로우해주는 참가자들은 일종의 '팬'인 것이다. 연예인들을 위해서 일해온 내가 연예인이 되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 가슴이 설렜다.


모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친구들을 찾아갔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위해서,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중 한 명이 35만 팔로워를 보유 중인 틱톡커이다. 최근 개인 홍보 수단으로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에 함께 숏폼에 관한 모임을 만들면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틱톡커 친구는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리고 둘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고 <35만 크리에이터와 함께하는 숏폼 부기>를 만들었다. 서로의 숏폼을 들고 와 피드백해 주는 모임이다. 모임은 생각보다 잘 됐다. 총 8회 동안 진행하였고, 평균 8명 정도가 모임에 참석해 주었다


그다음으로 찾아간 친구는 '하비에르'이다. 중남미 니카라과에서 온 외국인 친구이다. 하비에르는 경력 15년 의 베테랑 언어강사이다. 하비에르와는 스페인어 모임을 만들었다.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으로 이름은 <스페인어 몰라야 올 수 있는 스페인어 모임 with 강의경력 15년차 원어민 강사>이다. 스페인어를 사용해서, 게임과 액티비티를 하며 친구를 사귀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 내 모임 중 가장 잘 되고 있는 모임으로 <문토>, <넷플연가> 플랫폼에서 진행되고 다수 회차가 매진되었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언어강사인 하비에르도 놀란 듯했다.


모임을 만들 때 친구들의 매력을 어떻게 살려 모임을 만들지 고민했다. 틱톡커 친구는 이성적인 성격으로 토론, 토의를 즐기고 자기 발전적인 성향이 있다. 그래서 본인의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자기 계발성 대화 위주로 모임을 구성했다. 하비에르는 평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 있다. 기존 관습에 따르는 것보다 새롭고 재미있는 걸 추구하며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딱딱한 수업보다는 스페인어 게임을 만들어 모임을 할 수 있었다. 모임 중 맥주도 마실 수 있고, 서로 반말도 하며 예능 게임에 조금 더 가까운 하비에르다운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다 눈치챘다. 나는 결국 예능 작가구나. 내 친구가 출연가가 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구나. 내가 연예인 처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실망했을까? 전혀 아니다. 누군가의 매력을 찾아주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이타적이면서 매력적인 일이다. 예능 작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 내가 본 사람이 매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매력이 극대화될 수 있을지 발견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이다. 내 모임에 오는 참가자들도 다르지 않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면 모임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모르는 장점이 무엇이 있을지 끊임없이 탐구한다. 아마 방송만 했따면 내 강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임을 기획하며 몰랐던 장점들을 발견하는 중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밖으로 나온다면 깨닫는 게 많을 것이다. 내가 있는 세상이 좁았구나. 밖은 넓고 험한 것이구나.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아보면 더 중요한 것도 발견할 수 있다. 같은 개구리들과 함께 있을 땐 몰랐지만, 사실 나는 점프를 잘하고, 몸 색깔을 바꾸며 어디든 잘 융화 할 수 있는 멋진 존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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