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이 좋아서 예능 작가를 시작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었다. 선배에게 밉보여도, 제작사에게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내 꿈만을 위해 꾹 참고 달려왔다. 하지만 달리다 보니 뭔가 잘 못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많이 하면서 경력을 쌓아야 하지만, 어느새 한 프로그램에 안주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해보지 않은, 배울 게 많은 프로그램이라도 안정적이지 않으면 가지 않았다. 방송작가라는 꿈이 점점 내 생계 수단으로 되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왜 예능 작가를 하고 있는지 헷갈렸다. 예능 작가로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열망도 있었고, 안정적으로 꾸준히 돈을 모으고 싶어 도전을 기피하기도 했다. 이 두 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았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한다면,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보상은 그만큼 받지 못하는 기획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했고 (기획 프로그램은 대략 60~70프로의 급여를 받는다), 돈만을 쫒는다면 공중파가 아닌 유튜브, 예능이 아닌 시사, 교양 쪽으로 가야 했다. 이 두 개를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싶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이 없을 때는 우울해했고, 일이 있을 때는 불안해했다.
그러다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을 하면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작가 일을 하지 않고도 이 정도 금액을 벌 수 있다는 건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쓰는 돈이 버는 돈 보다 많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쿠팡 물류센터에 가서 일일 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 진짜 빡셌다. 땀이 온몸에 흐르고, 시간이 천천히 가면서 빠르게 갔다. (열심히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있지만, 여전히 퇴근 시간은 아득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택배를 옮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예능작가로 평소에 편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과 정신이 다르게 흐르는 작업장에서 돌아온 다음날, 나는 바로 작가 자리를 찾았다. 조건은 간단했다. 모임일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꾸준한 금액을 벌 수 있는 곳. 굶지만 않으면 됐다. 내 통장 잔고를 0원으로 만들지 않기만 하면 됐다. 한 달에 100만 원이라도 꾸준히 들어오는 곳에 지원을 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이력서 한 개를 낼까 말까였는데, 그날은 하루에 이력서를 3개나 냈다. 목적이 뚜렷하니, 방법이 간단해졌다. 더 이상 예능작가로서 꿈을 이루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마음에 드는 자리가 안 나와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졌다. 작가일은 나에게 '수단'이 되었다.
모임일을 처음 시작할 때 은연중으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모임을 성공한 내 모습을 작가들한테 보여주기.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방송일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가치 있는 사람인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이렇게 돈이 없어서 작가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방송일을 하다 그만둔 선배 작가들이 결국 돈이 궁해져서 다시 방송으로 돌아온다고 하던데. 사실 내 이야기였다.
하지만 절대 낙담하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자유로워졌다. '예능 작가'라는 직업에 갇혀 불안해하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됐다. 작가에 대한 목적이 간단해졌다.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이용하면 됐다. 내가 좋아하는 모임일을 지탱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 됐다. 사실 내가 하는 직업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먹는 것과 내가 입는 것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너무 큰 기대로 나는 나를 가두어왔던 것이었다.
예능 작가로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꿈은 희미해졌다.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대신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며 계속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매일매일을 가치 있게 하고, 혼자 어둠에 빠지지 않는 더 멋진 꿈인 듯싶다. 더군다나 이 꿈에는 돈이 없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