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까야 Jul 02. 2024

망한 예능작가에게 온 편지

- 2024년 5월의 나에게


오랫동안 쓰지 않던 블로그에 있는 한 비밀글의 제목.  

1년 전의 내가 1년 후의 나에게 쓴 편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두서없는 내용.

바꿀까 고민하다 처음 그대로 용기대어 공유한다.

이제 조금 못난 모습도 꺼내어 봐도 될 것 같으니까




요즘 참 이상해. 내 기분이 극단을 달리고 있어. 1월 방송 프로그램을 끝내고 이력서를 10통 넘게 보냈지만 연락조차 오지 않아 (내가 거절한 것도 몇 개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긴 공백기와 거절에 숨이 너무 많이 차. 욕심 많은 내가 싫어. 방송 프로그램 연락을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눈을 뜨기가 싫을 때도 있어. 그냥 자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일어나고 싶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내가 30살에 바라던 인생과 거리가 멀어. 그런데 여자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으니 행복감이 충만해. 내가 사랑받고,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이 너무 나를 행복하게 해. 오늘 등산을 했는데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았어. 돗자리를 깔고 여자친구 눈을 한참 들어다 봤어. 눈동자에는 내가 비치고 좋은 숲냄새가 나고 나뭇가지들은 하늘로 높게 뻗어있었어. 우리 둘 다 행복했어.

행복하다가도 불안해. 불안하다가도 안도하게 돼. 깊은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고 있어. 그러지 말아야지. 지금 쉬면서 즐겨야지. 좋은 것에 집중해야지. 하고 되뇌는데도 쉽게 불안은 가시지 않아. 너는 어때 내년의 너는 어떻니. 잘 살고 있니. 행복이랑 불안이 강렬하게 공존할 때 불안을 없애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되니. 나는 아직 몰라. 행복에만 집중하기가 어려워.




- 2023년 5월의 나에게


답장이 늦어 미안해. 사는 조금 바빴어

너는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아

하나 신기한 거 말해주자면, 지금 하고 있는 건 작가 일이 아니야.

네가 상상해 보지도 못한 다른 일에 도전해 보고, 하루하루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어.

도망친 거라 생각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도망친 거라기엔 수입도 적고, 작가일보다 더 불안정해

매 순간 무능력을 자각하고, 가끔씩 작가일을 그리워할 때도 있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1년 전보다는 불안하지 않아

모든 외부 상황이 작가일을 할 때보다 나은 게 없는데, 마음은 평화로워

가끔 내가 현실자각을 하지 못하는 건가 섬뜩할 때도 있지만, 굳이 돌아가려 하지는 않아

지금이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다고 생각하거든


'불안을 없애는 방법'을 물었지? 그건 나도 아직 몰라.

하지만 줄이는 방법은 알아. '운'이 좋아야 해

타고난 운 덕분에,

나를 행복하게 해 주던 여자친구도 아직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주고 있고, 능력을 발견해주고 있어.

나를 지지해 주는 친구도 변함없이 그대로야

더 많은 만남을 가지면서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야


지금 너라면 조금 불안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1년 뒤 지금의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알 수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워할 수 있는 거야

이전 10화 방송에 갇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