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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Jul 16. 2024

예능에서 잘렸다


더 이상 같이 못 할 것 같아요


어제 아침, 선배 작가가 나한테 전화로 한 말이다. 최근에 한 예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했다. 야심차게 도전했던 모임 기획 만으로는 수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아침에 나는 잘렸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선배 작가는 구체적인 사정을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요악하자면, 사정이 나빠진 제작사가 나한테 줄 돈이 없다는 이유였다. 


수긍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예능이 안 좋지,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예능 작가를 안 하려는 거잖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모두의 사정이 이해가 됐다. 돈이 없는 제작사. 후배 작가에게 어렵게 어렵게 나쁜 소식을 전달해야 했던 선배 작가.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되는 나까지. 하지만 막막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방송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또다시 위태로운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만 나왔다. 통장잔고의 숫자가 떨어지는 속도에 매번 놀란다. 나에게 남은 날은 얼마나 될까.    





잘리고 나서 3시간 뒤, 활동 중인 모임 플랫폼에서 연락이 왔다. '여름휴가 콘테스트에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플랫폼 메인 배너와, 공식 인스타그램에 내 모임을 홍보할 수 있는 여름휴가 콘테스트에 선정된 것이었다. 지난번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지원했는데, 이렇게 될 지 몰랐다. 이번 기회만 잘 활용하면 모임장으로서 내 계정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예능 작가로 해고 소식을 받고 3시간 뒤, 모임 기획자로서 당첨 소식을 받았다. 여행 모임은 기획해 본 적이 없지만, 이리저리 물어보며 열심히 콘셉트와 루트를 짰다. 적당한 부담감 덕분에 몰입할 수 있었다. 길을 잃었는데, 다시 길이 보인다. 


물론 여름휴가 콘테스트에 선정된 것이 모임 사업을 진일보할 수 있는 명백한 기회가 되는 건 아니다. 큰돈이 떨어지는 건 더욱 아니다. 하지만 감사했다. 새로운 걸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방황하고 패배감에 젖어있는 대신, 도전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내 삶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기회를 잃었다 생각하면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 통장잔고가 줄어들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불안감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모임을 새로 만들고, 글을 쓰는 창작활동이 돈이 되지 않지만, 충족감을 준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아도, 그냥 주어진 길을 그냥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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