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제작사에서 작가 급여 못 준대
예능작가들이 다 한 번씩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방송계에는 급여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예능작가들이 꽤 많다. 제작사의 사정이 안 좋거나, 제작비가 빠듯할 때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구체적인 시스템은 모르지만, 그럴 때면 작가들이 급여가 항상 칼날에 오르고, 난도질당한다. 해당 소식을 들은 선배 작가들은 후배 작가들에게 대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2주 치 급여를 못 받은 적도 있고, 프로그램 론칭 전 기획 단계에 급여를 반만 받은 적도 있다.
정당한 급여를 못 받을 때 찾아오는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군가는 노동청에 바로 신고하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들은 법적 근로자가 아니라 계약자이다. 부당함을 증명하려면 제작사에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되고, 급여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그 프로그램에서 바로 나오면 되지 않느냐. 그것 또한 어렵다. 첫 번째로 만약 프로그램 1~2회 차의 급여를 못 받고 나가면, 지금 내가 준비하는 3~4회 차의 급여도 못 받게 된다. 3~4회 차의 급여를 받기 위해서라도 악착 같이 버텨야 한다. 두 번째로 이때까지 같이 합을 맞춰온 동료 작가들을 두고 나만 나가기 어렵다. 내가 나가면 같이 급여를 못 받은 동료 작가들이 내 몫까지 일해야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급여'라는 개념에 민감해졌다. 내가 노력을 하면 돈을 받아야 한다. 돈을 받지 못하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 생각했다.
오늘도 모임 하나가 취소되었다. 참석자 모집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콘텐츠 또는 마케팅 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해당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팀원과 카페에서 대략 10시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연락하며 상세 페이지를 수시로 수정했다. 한번 만났던 사람들에게 모임 상세페이지 링크를 보내주며 피드백을 받았다. 하지만 한 명도 오지 않아 모임을 취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모임을 만드는 노력은 대부분 돈이 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하지만, 모임이 무산될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래도 계속한다. 예능 작가일 때는 노력에 값이 매겨지는 급여에 민감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처음엔 '확신' 때문인 줄 알았다. 내가 언젠간 모임으로 고정적인 급여를 벌거라는 이유 모를 확신감 때문에, 지금 무의미해질 수도 있는 노력을 계속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다르다. '확신'도 있지만 '재미'도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모임을 기획하고 실현되는 과정이 재밌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을 쏟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자신 있는 걸 하는 게 재밌다.
최근 만화 <슬램덩크>를 다시 보면서 전율을 느낀다. '북산 고등학교'의 농구 선수들은 돈도 경력도 안 되는 고교 농구에 열정을 쏟는다. 발목이 꺾여도 등이 삐끗해도 다시 코트 위로 오른다. 지금이 자신의 '영광의 순간'이라고 한다. 지금 포기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듯하다.
확신이 들고, 재미를 느끼는 분야를 찾은 지금, 나도 한번 돈도 안 되는 노력을 마음껏 쏟아보려고 한다. 지금이 나의 영광의 순간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