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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ki May 30. 2020

“여행도 인생도 조각그림퍼즐과 같다.”

(Travel + Life = Jigsaw Puzzle)

“인생에서는 그 어떤 것도 버려지는 조각이란 없다.” -최석근-



아이들이 커가면서 한 번쯤은 조각그림퍼즐을 경험한다. 10조각에서 10,000조각까지 크기도 내용도 다양하다. 우리의 인생도 조각그림퍼즐과 같다. 경험이 많을수록 퍼즐조각의 수가 많아진다. 조각이 많으면 그림도 더 디테일해진다. 경험이 다양할수록 조각그림의 내용도 더 멋있어진다. 그 어떤 경험도 버릴 조각이란 없다. 실패했던 경험들이 오히려 멋진 칼라를 만들어준다. 경험이 많고 다양할수록 인생의 마스터피스가 만들어진다.


우리의 인생은 한 폭의 조각그림퍼즐 맞추기와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 번쯤은 조각그림 퍼즐을 경험한다. 처음에는 20조각, 50조각에서 시작하지만, 익숙해지면 200조각, 1000조각에 도전한다. 퍼즐그림은 만화 주인공부터 나이아가라폭포 같은 풍경사진까지 각양각색이다.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은 인생이라는 것과 많이 닮아있다. 마치 수많은 희로애락으로 만들어진 인생의 조각퍼즐들을 조립하는 것과 같다.


퍼즐을 많이 맞추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림의 디자인과 칼라가 서로 비슷하고 단조로운 것들은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을. 그림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칼라도 다양할수록 퍼즐조각들을 구분하기가 쉬워서 맞추기가 쉽다. 내가 걸어온 길들이 편안하고 순탄함의 연속이라면 비슷비슷한 조각들로 맞추기가 어렵다. 반대로 파란만장한 경험의 선들과 칼라로 된 조각들은 맞추기가 수월하다. 맞추는 과정 자체도 훨씬 재미있고 즐겁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된다.

캐나다의 존 머레이(John Murray)는 저서 <캐나다식 모자이크>에서 ‘모자이크 이론(Theory of Mosaic)’을 주창했다. 여러 가지 칼라의 조각들인 이민자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완성한다는 다문화사회이론이다. 기존 캐나다인들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 없는 이민자들이지만 포옹하듯이 포용하겠다는 의지다. 성공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실패는 반가울 수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실패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되고, 한 폭의 멋진 조각그림퍼즐이 된다.


인생에서는 그 어떤 것도 버려지는 조각이란 없다.


고난과 시련, 실패와 좌절은 칼라로 치면 무채색의 어둡고 짙은 칼라다. 선으로 치자면 굵은 선이다. 이 어둡고 굵은 선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안 좋아 보여서 버리고 싶어진다.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림의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면, 짙고 두꺼운 선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뼈대역할을 한다. 밝고 가벼운 칼라들만 있으면 강약이 없고 힘이 없다. 어둡고 굵은 선들은 그림의 형태를 잡아주고 전체적인 균형감을 잡아준다. 어둡고 버리고 싶은 것들이 오히려 그림을 살리는 핵심이 되는 것이다.


태국 ‘빠이’라는 오지마을에서 밤 12시에 길거리음식 와플을 먹고 아이가 배탈이 난 적이 있다. 갑자기 두드러기까지 나면서 상태가 심각했었다. 먹은 걸 다 토해내고 밤을 새다시피 했다. 엄마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에게도 위기상황이었다. 아침에 병원에서 약을 먹고 나서야 가라앉았다. 호주 친구네에 갔을 때에는 아이가 그 집 마당에서 트램폴린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려서 걷지를 못했었다. 근처 병원에 가서 X레이와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어서 곧 걸을 수 있었다. 당시엔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에게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고글을 써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세찬 눈보라
눈보라 속에서 잘못 진입한 최상급 슬로프

스포츠가 아이의 성장과 심신단련에 좋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접하게 했다. 그 중 스노우보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미라 아이에게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가르쳤다. 스노우 파우더를 경험하기 위해 아이와 외국 스키장에 갔을 때였다. 정상에서 눈보라를 뚫고 초급코스로 들어간다는 것이 잘못해서 최상급 슬로프로 진입해 버렸다. 아이는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와 세찬 눈보라에 다리를 떨고 두려워했다. 아빠 손을 잡고 용기에 용기를 내어 1시간 후에 가까스로 베이스에 도착했다. 그리곤 엄마를 만나자마자 참아온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래서 슬로프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1시간에 걸쳐 내려온 최상급 슬로프를 완주한 후 참았던 눈물이..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점을 이어라(Connect the dots)’라는 말을 했다. 스티브잡스가 이야기 한 ‘점(dot)’은, 그 당시에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생각과 경험들을 말한다. 예로, 스티브잡스가 리드대학에서 흥미로 배웠던 서체교육은 10년 후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세계 최초의 맥컴퓨터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정규과목을 그만두고 서체과목을 등록했던 스티브잡스 본인조차 서체가 미래 자신의 위대한 발명품에 응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훗날 완성될 인생의 전체그림을 두고 바라볼 때, 인생경험에서 쓸모없고 버릴 경험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고난과 아픈 실패경험들은 미래에 더욱 더 빛나는 조각들이 된다. 슬프고 힘들었던 조각들은 미래에 완성될 큰 그림에서 주춧돌이 되고, 터닝 포인트가 된다. 예상치 못한 힘과 열쇠가 된다. 그 시점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나 조각그림 전체에서는 버려질 조각이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이가 만들어 갈 마스터피스를 위해 다양한 경험을 허용하자.


아이가 중학교로 올라가기 전,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이용해 뉴질랜드로 트레킹을 갔었다. 초등학생 때의 마지막 추억을 아빠와의 트레킹여행으로 장식하고 싶었다. 그래서 BBC선정 3대 트레일(Trail)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밀포드 트랙을 선택했다.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원시림 같은 곳 54km를 4일 간 걷는 여행이었다. 전 세계에서 온 50여 명의 다국적 트래커들과 함께 모든 여정을 함께 하는 ‘멋진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빠의 생각이었다. 인터넷강국의 도시에서 살던 아이에게 전화도 안 되는 원시림에서 매일 20km 가까운 거리를 걷는 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트레킹 3일째에는 고도 1,154m의 정상을 지나는 가장 어려운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10km 배낭을 메고 한참을 올라가던 아이가 한 마디를 했다. “아빠! 내가 지금 여기를 왜 올라가고 있지?” 오르막길이 나름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리막길은 더 힘들었다. “내리막길 진짜 징글징글하다. 아~ 막막하네.” 아이의 한 숨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아이가 4일째 마지막 코스에서는 1등으로 도착하자며 나보다도 빨리 걸었다. 진짜로 첫 번째로 도착해서 No.1에 자기이름을 쓰고는 점프하며 좋아했다. 5일째는 크루즈를 타고 밀포드 사운드의 피오르드랜드(Fiordland)를 보는 하이라이트였다. 힘든 고생 후에 맛보는 찬란한 기쁨에 아이와 나는 멋진 하이파이브를 했다.

인생의 조각그림퍼즐에서는 좋은 경험만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경험들만 많은 것은 마치 밝은 칼라들만 가득한 것과 같다. 너무 밝기만 해서 가벼워 보이고 임팩트가 없다.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퍼즐을 맞출 때도 매우 힘들다. 삶의 굴곡이 있는 어두운 칼라들이 있어야 무게감이 생기고 안정감이 있다. 밝은 부분을 진짜 밝게 해주려면 어두운 것들이 필요하다. 각각이 단독으로 있을 때는 못 느끼지만 함께 있으면 비로소 어우러지는 힘을 발휘한다.


실패와 어두운 경험들이 가득하다고 해서 모두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치면 없느니만 못하다(과유불급, 過猶不及)고 했다. 조각그림이 온통 어두운 색깔 일색이면 보는 사람도 마음이 어두워진다.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본인도 그렇게 되기 쉽다. 성공과 실패가 함께 있어야 칼라도 다양하고 그림도 다채로워진다. 보는 이도 그 역동성에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힘이 난다. 기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어려움과 시련을 겪을 때 항상 해결해 주려고만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경험하도록 응원해주어야 한다. 위기와 고비의 순간들을 극복할 때에만 만들어지는 오묘하고 멋진 칼라들이 있다. 그 칼라들을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고비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고비가 많을수록 스토리가 풍성해진다. 스토리가 풍성한 조각들이 뛰어난 그림을 만든다. 아이가 자신만의 인생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어릴 때일수록 선택, 도전, 실패, 시련을 겪을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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