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ki Aug 16. 2020

쿠바여행에서 받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

앞으로도 다시없을..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생텍쥐페리-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우리는 여행 가방부터 챙긴다. 기본 물품 외에도 혹시 필요할지 모를 물건들, 여분의 물건들을 넣느라 큰 가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행이 반복될수록 많은 짐(baggage)은 무거운 짐(burden)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여행가방의 무게는 우리 마음속 걱정의 무게라는 걸 깨닫게 된다. 완벽한 배낭이 없어도 여행을 잘할 수 있다.  배낭 속 불필요한 짐들을 꺼내놓을 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멋진 쿠바여행의 시작~

쿠바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바퀴를 내려놓은 것은 아바나 현지시각으로 밤 9시 14분이었다. 지구 반대편까지 서울에서부터 28시간 만의 도착이었다. 두근대는 가슴을 달래며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배낭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여행자가 떠날 때까지 내 배낭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밤 11시쯤 분실물 사무실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니 시가를 피던 쿠바 여성이 쪽지 하나를 건넨다. 사무실 전화번호였다.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하란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친구’라는 표정이었다. 어이없었지만 공항엔 다른 사람도 거의 없어서 방법이 없었다. 한시 앞을 알 수 없는 나의 멋진 쿠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택시로 아바나 시내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가 넘어서였다. 지구 반대편 공산국가에 배낭도 없이 자정이 넘어 혼자 도착하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현지에서 알아보고 결정하려고 숙소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숙소 후보지로 알아놨던 까사(Casa, 쿠바 현지인 숙소)를 어렵게 찾아가 대문을 두드려 자던 사람을 깨우고 들어간 것이 새벽 1시쯤. 그나마 마지막 하나 남은 사무실 옆방을 얻은 건 행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막무가내인 면이 있다. 다음 날 아침 걱정 반 기대 반, 쪽지의 공항 사무실로 전화를 했더니 ‘네 배낭 못 찾겠다. 내일 다시 전화해라’라는 무책임한 답변뿐이었다.


내 상황을 알게 된 까사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전화번호 쪽지를 달라며 하며, 아들 옷장에서 바지와 티셔츠를 꺼내 주셨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문제는 자기 문제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아바나를 즐기라고 하셨다. 감동을 넘어 감탄의 순간이었다. 쿠바 아주머니의 배려와 호탕함에, 배낭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인생 별거 없다. 그냥 가볍게 왔다고 치자!’ 아침 7시, 배낭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바나 시내로 향했다.

3일째에도 내 배낭을 찾을 수 없다는 분실물 사무실의 답변을 듣고, 나는 최초 계획대로 도시를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사지 못했던 속옷과 세면도구, 그리고 작은 에코백 하나를 구입했다. 그 에코백 하나로 나는 1주일 넘게 쿠바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했다. 에코백 안에는 팬티 2장, 티셔츠 1장, 치약, 샴푸, 면도기, 책 한 권, 충전기가 다였다. 신기한 건 그렇게 다니는 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는 거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처음 겪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배낭여행을 많이 해온 나조차도 배낭이 없어도 여행이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며칠 지나고 나니 ‘내가 20kg 배낭에 도대체 뭘 그리 많이 넣었던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반대말은 행여하는 걱정이다

배낭을 잃어버린 처음 이틀간은 배낭이 있어야만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전화뿐 아니라 이틀간 매일 아침 아바나 국제공항을 비싼 택시를 타고 가고 또 가고 했다. 결국 배낭을 포기하고 마음도 내려놓고 여행을 시작하자 그제야 ‘내 마음의 걱정이 문제였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거꾸로 읽으면 ‘행여’가 된다. 나는 행여 내 배낭을 못 찾을까 봐, 행여 배낭이 없으면 여행을 망칠까 봐 걱정했었다. 처음엔 이 ‘행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들어본 적도, 경험을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낭을 잃어버리고 며칠 적응이 되자 다시 제대로 된, 아니 더 멋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행여’라는 글자를 다시 ‘여행’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그의 저서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걱정’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벌어졌으며, 22%는 아주 사소한 것이고, 4%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남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진짜 걱정이다. 결국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쓸데없다는 것이다. 칼 필레머(Karl Pillemer) 코넬대 교수는 인류 유산 프로젝트(Correll Legacy Project)에서 죽음을 가까이 둔 80대 이상 노인들에게 인생의 후회 리스트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그 후회 리스트 No.1은 ‘걱정으로 시간낭비했던 것들’이었다.


배낭여행에서 ‘배낭’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경험과 깨달음을 선사한다. 일단 배낭은 고급스럽게 형태가 잡혀있는 러기지(Luggage)와 달리 형태가 유연하다. 짐을 싸고 정리하는 데에 고민과 지혜, 노하우가 필요하다. 여행기간이 길거나 여행지가 다양한 날씨와 지형을 거치는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배낭은 여행자가 어깨와 등으로 직접 짊어지고 다닌다. 자유로운 만큼 몸이 피곤하기도 하다. 자신의 기본 필요물품들을 자신이 직접 짊어 메고 다니는 건 깊은 깨달음을 준다. 러기지의 바퀴에 기대거나 트렁크에 싣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온갖 대비를 위해 배낭 안에 바리바리 준비했던 여행 짐들이 정말 다 필요한지 되돌아보게 해 준다. 여행의 고수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공통점은 고수일수록 짐이 작고 가볍다는 것이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면 줄일수록 우리는 몸과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된다. 걱정을 내려놓으면 이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마음의 여유를 충분히 갖는 것이 중요하다. 배낭이 가벼워야 내 아이가 더 잘 보이고, 여행이 주는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여행’은 거꾸로 읽을 때의 ‘행여’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정한 여행을 맛볼 수 있게 된다.

걱정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보이나 느끼지 못했던 쿠바의 아름다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여'로 갔던 마음을 다시 '여행'으로 바로 잡으니 눈부신 아름다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낭을 비울수록 채울 것이 많아진다

쿠바에서 우연히 배낭을 잃어버림에 따라 나는 매우 가볍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작은 에코백 하나에 필요한 몇 가지만 넣고 다니며 쿠바의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가벼워져 훨씬 여유 있는 시선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소비를 할 때도 담아갈 배낭이 없다 보니 물건을 사는 일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쿠바노(쿠바+아프리카 스타일) 기타를 배울 수 있는 기타 강습(배움)에 소비를 하고, 현지에서 다른 배낭여행자들과 가볍게 조인해서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유보다는 ‘공유가 가능한 경험’에 소비하기 시작했다. 쿠바 여행의 모든 경험들은 돌아와서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값진 추억이 되었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소유할 물건에 소비하기보다는 공유할 수 있는 경험에 소비하는 것이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걱정을 버릴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쿠바 일상의 작고 아름다운 것들 1
걱정을 버릴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쿠바 일상의 작고 아름다운 것들 2

급하게 여행을 오다 보니 속옷도 빼먹고, 샴푸도 놓고 왔다고 치자!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해결방법은 둘 중 하나다. 돈을 들여 사거나 돈을 들이지 않고 빌리는 것이다. 나는 공유가 가능한 아이템은 주위에서 빌리고, 그렇지 않은 아이템은 현지에서 현지인의 손길이 들어간 것을 사는 편이다. 공유가 가능한 샴푸, 린스 같은 물품들은 같은 숙박 여행자들에게 조금씩 빌린다. 그러면 그걸 통해 말을 트게 되고 대화로 연결되어 새로운 네트워크가 시작된다. 공유가 불가능한 속옷이나 가격이 비싸지 않은 아이템들은 현지 조달을 한다. 가능하면 현지인의 손길이 들어간 아이템을 산다. 여행을 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부족한 물품을 현지 조달 함으로써 현지의 경제활동에 도움을 줄뿐더러 의식하지 못하던 문화의 차이를 깨닫기도 한다.

마음속에 걱정이 남아있었다면 보지못했을 쿠바아이들의 순수한 일상의 순간들 in Trininad


배낭이 없어지고 가벼워지니 그 안에 여행이 주는 깨달음들을 넣어올 수 있었다. 걱정이 있던 자리에 설레임이 들어오고, 소유가 있던 자리에 공유가 들어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길 가의 꽃들만 봐도 아름답고 감사하다. 배낭을 비우면 비울수록 어깨가 가벼워져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고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진다. 우리가 메는 인생의 무거운 배낭도 걱정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다. 가벼워진 배낭에 비로소 타인들의 좋은 생각과 조언들도 담을 수 있다.

걱정을 버리고 즐기기 시작한 순간들.. 헤밍웨이와 함께 다이키리 한 잔 in El Floridata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배낭이 가벼워도 여행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경험을 통해 가르쳐 줄 수 있다. 배낭 자체가 아예 없어도 여행을 잘할 수 있다고, 이력서에 쓸 스펙이 부족해도 인생을 잘 살 수 있다고. 완벽한 준비, 화려한 스펙, 좋은 학교 출신 등이 없어도 인생을 잘 살 수 있다고 알려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일수록 배낭을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무엇을 채워갈 것인가 보다 무엇을 채워올 것인가가 중요함을 경험을 통해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걱정을 비우고 가볍게 떠나는 여행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어오게 된다. 성장을 위한 비상은 몸이 가벼울수록 더 쉽고 빠르게 날아오를 수 있다. 마치 깃털이 적어 더 높게 비상하는 알바트로스처럼..


“여행이란.. 걱정과 불안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짐을 가득 가져가는 ‘가방 옮기기’가 아니라, 배낭을 가볍게 해서 그 안에 새로운 관점과 희망을 ‘담아오는’ 것이다.” -최석근-




p.s. 참고로 내 배낭은 나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여행했다는 것을 귀국 후 두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 후 사진까지 정리가 끝나갈 무렵 내 배낭을 칠레에서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후 2주일쯤 후에 매우 뚱뚱하게 꽉꽉 채워진 등산용 배낭을 받게 되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은 반가움보다 더 컸던 묘한 감정은 내가 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챙겼을까 라는 의아함에 놀라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전 06화 때로 진짜 찐~ 여행은 혼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