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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ki Sep 10. 2020

편안함이냐 즐거움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아이의 자기 주도 여행

“편안함은 수동적이게 만들지만, 즐거움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최석근-


아이의 성장을 위해 많은 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난다. 집 앞 놀이터에서 비행기 타고 멀리 해외로까지.. 떠나기 전부터, 떠나서도, 돌아와서도 모든 걸 부모가 주도한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무작정 따라만 다니는 여행은 재미가 없다. 재미를 느끼려면 아이도 직접 참여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모든 걸 놀이로 인식하고 재미를 우선시한다. 재미있는 놀이는 아이 자신이 주도권을 가진 놀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이 장착되는 순간, 여행도 공부도 재미있어진다. 성장은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에 책임지는 여행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아이는 무엇이든 직접 주도할 때 재미를 느낀다


이제 여행도 패스트 패션의 한 시즌 입고 버리는 수명 짧은 옷들처럼 되어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나아지면서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물론 최근엔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은 ‘1’도 못 가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행 가격도 낮아졌다. SNS의 발달로 최저가, 우주 초특가 같은 이벤트에도 익숙해졌다. 종편과 케이블 TV의 보편화로 눈으로 보는 간접 여행이 많아져 여행지는 우리와 한층 가까워졌다. 이국적인 것들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도 약해져서 여행에 대한 관점 자체도 바뀌어 가고 있다. 신경 쓰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편하게 보기만 하면 되는 TV처럼, 여행에 대해서도 점점 더 수동적이 되어가고 있다. 편의라는 이름하에 점점 자발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환갑이 넘으신 처가 큰 형님은 지인들과의 모임을 통해 오랫동안 패키지여행을 다니셨다. 나이가 있으신 모임이라 편하게 여행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한 번은 내가 처가 형님 가족들은 모시고 배낭여행처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생각 외로 매우 좋아하셨다. 패키지여행에서 따라만 다니다가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여행의 맛에 빠지신 것이다. 한 동안 매 번 명절 연휴 때마다 다음엔 어디로 가냐는 즐거운 압박을 받기도 했다. 편안한 여행과 즐거운 여행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편안함은 수동적이게 만들지만 즐거움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 신혼부부들과 신세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닌다. 아이를 위해 목적지를 신중히 고르고, 아이를 위한 준비물도 꼼꼼히 챙긴다. 먼저 다녀온 이들의 SNS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와 놀이시설들을 스크랩해놓는다. 떠나기 전 준비부터, 떠나가서도, 다녀온 후에 추억 정리도 모두 부모가 주도한다. 아이는 놀라는 곳에서 놀고, 먹으라는 곳에서 먹는다. 따라만 다니니 곧 지루해하고 힘들어한다. 그러면 아이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준다. 아이를 위한 여행에 정작 아이는 없다.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에 부모가 모든 것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여행, 신경을 ‘1’도 쓰지 않아도 되는 여행만을 원한다면 수동적인 여행일수록 좋다. 예약부터 길안내, 먹을 것, 잘 곳, 볼 것, 할 것 등 모든 것을 다 해주는 패키지여행이 대표적이다. 힘든 직장생활, 스트레스 많은 사업가 등 많은 성인들이 힐링을 우선시하면서 패키지여행들이 인기다.(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여행은 가장 나쁜 여행의 형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해보고 경험해볼 때 가장 재미있어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성공하려면 아이의 자발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장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주도권을 주어야 한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른다. 모든 부모들은 아이가 리더로 자라나길 원한다. 회사에서의 직책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자기 삶을 스스로 리드해 나가기를 원한다. 아이를 리더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 스스로가 주도권을 가지고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즉, 리더의 역할과 책임감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반복해서 기회를 주고 책임감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에게 필요한 강한 동기부여는 스스로 선택했을 때이고, 자신에게 역할과 책임이 주어졌을 때이다.

선물로 뉴질랜드 5달러를 주고 사고 싶은 물건을 사라고 했더니 20분을 고민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아이가 4학년 때 추석 연휴에 처가 가족 12명을 모시고 제주도로 여행 간 적이 있다. 가장 큰 스타렉스 차량을 렌트해서 관광지와 맛집들을 돌아다녔다. 나는 운전하고 아들은 보조석에 있다가 아빠를 도와 음악을 담당하게 되었다. 나는 가족들 앞에서 아이를 ‘트래블 DJ’로 소개하고 역할을 부여했다. 여기저기서 신청곡이 쏟아졌고, 아이는 하나하나 모두 멋지게 소화했다. 신청곡이 없을 땐 스스로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선곡하고, 가족들이 잠이 들자 은은한 BGM(배경음악)도 깔아주었다. 역할을 주었더니 놀라운 책임감과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아이 스스로도 재미있어하고 매우 즐거워했다.


어느 날 반려견 TV 프로그램에서 강아지 전문가가 한 견주(강아지 주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까봐병에 걸리셨군요!” 그 견주는 강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잔디밭에서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강아지에게 깔아주었던 것이다. 강아지가 추울까 봐, 배고플까 봐, 아플까 봐 하는 견주의 과잉보호를 재미있게 꼬집은 표현이었다. 우리 주위에도 까봐병에 걸린 부모들이 많다. 작게는 준비물 챙기기부터 크게는 진학과 같은 중요한 고민까지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해준다. 부모가 까봐병에 걸려 하는 모든 행동들은 아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원인이 된다.

 

Helicopter Parent

한 때 미국에서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자녀의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맴돌면서 과잉보호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헬리콥터 부모의 경우, 자신의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영향력과 힘을 경험해보지 못하기에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할 힘도, 생각도, 의지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의식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평생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위 두 가지 유형 부모들의 본질적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과잉 불안이다. 실패는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기회이자 배움이라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져서 감정은 무시하고 행동만 꾸짖는 행동 코칭을 하게 된다. 아이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행동을 고쳐주는 감정코칭이다. 걱정이 앞서는 부모는 감정코칭을 이해하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말이 쉽지 감정코칭은 어렵다. 왜냐하면 기다림과 인내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감정코칭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넘어지고 실패해도 기다리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해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인내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아니한가. '부모의 역할은 기다리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자기가 스스로 했을 때 아이들은 큰 책임감과 함께 격한 기쁨을 느낀다.


여행은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준비할 때, 가서도 준비한 만큼 눈에 보인다. 아이들은 모든 걸 놀이로 인식하고 재미있는 것을 선호한다. 어떤 놀이든 자기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결정하면 그 놀이는 재밌는 놀이가 된다. 여행도 그렇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하면 재미를 느끼고 즐거워한다. 힘든 여행도 거뜬히 이겨낸다. 이렇게 자발성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는 자율성, 혼자서 리드하며 하는 주도성(Self-initiative)과 같은 말인 것이다.


친한 친구 가족들과 콘도로 1박 2일 여행을 갔을 때다. 초등생과 중등생 총 5명이 시끄럽고, 정신없고, 각자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재미있게 놀기를 원했다. 그래서 종이와 펜을 주며 말했다. “몇 가지 원칙을 줄 테니 너희들끼리 의논해서 지금부터 1박 2일 간 재미있게 놀 계획표를 만들어 와라. 너희끼리 모두 합의하고 부모님들이 동의하시면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놀게 해 주마!” 그러자 아이들은 “우와~”함성소리를 내며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곧 계획표를 만들어왔다. 너무 늦은 취침시간만 수정한 후 그대로 확정했다. 아이들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가 가장 재미있었던 추억 중 하나라고 얘기한다.


자발적으로 리드하는 여행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여행 가서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방법이 아이의 자발성을 키워주는 것은 아니다. 가정이나 집에서 평소에 하던 행동들을 장소만 옮겨진 여행지에서 하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 중요한 것은 장소와 환경이 바뀐 것을 계기로 아이가 스스로 해보도록 기회를 주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아이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에 대해서는 자기가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의 숟가락, 젓가락 챙기기, 먹은 그릇 설거지 통에 갖다 놓기, 스스로 칫솔질하기, 자기 옷 스스로 입고 벗고 챙기기, 자기 여행가방 스스로 풀고 정리하기 등이다. 아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 자발성의 시작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주 쉽고, 작고, 간단한 일로 역할을 주고 책임을 부여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익숙해지면 조금 크고 긴 역할, 조금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그다음엔 여행의 일부분을 맡기고, 적응이 되면 여행 전체를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 혼자 해보는 식이다. 즉, 아이의 능력에 따라 도움의 양을 조절하고, 아이가 자신감을 갖도록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아이가 리드하는 여행을 만들되 순차적으로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여행의 목적과 준비를 아이가 자발적으로 하게 되면 그 여행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여행은 그 여행이 계획대로 되어도, 되지 않아도 모두 성공이다.


아이가 중1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여행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겨보았다. 카드로 결제하는 것 빼고는, 여행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걸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게 했다. 여행 목적지와 콘셉트는 제주도 배낭여행 올레길 걷기였다. 5박 6일간 걷고 싶은 올레길 코스, 자고 싶은 숙소, 먹고 싶은 식사를 모두 스스로 결정하게 했다. 안전과 관련된 몇 가지 원칙을 제외하고는 아이가 결정하고 계획한 것들을 모두 그대로 실행했다. 여행 가서도 출발시간, 간식 선택 등 모든 것들을 아이 결정대로 실행했다. 아이가 계획한 대로 잘 된 날도,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날도 모두 놀라움과 즐거움, 배움이 함께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매일 썼던 여행일기를 읽으며 와이프도 나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한 뼘 더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올레길에서 내가 했던 건, 아이의 계획대로 따라다니며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저 함께 걷고, 먹고, 즐긴 것뿐이었다.


아이의 일기장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있었다.

“힘들게 올레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20코스의 도착지점인 해녀박물관에 이르렀다. 올레 패스포트 도장을 찍고 박물관 전망대에 올라가서 맞는 시원한 바닷바람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짜릿했다.”


“제주도는 아빠 엄마와 함께 정말 많이 왔었는데, 관광만 했던 예전 제주도 여행과는 많이 달랐다. 관광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바쁘게 여러 곳을 다녀보는 것이 대부분인데, 올레길 코스를 통해 직접 걷다 보니 제주시민들의 생활모습을 가까이서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코스를 걷고 하나둘씩 일정을 진행하다 보니까 계획을 짤 때보다 시간이 늦어지거나 해서 넉넉하게 해놓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힘든 여행이 될 뻔했다. 계획할 때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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