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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ki Jul 28. 2020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여행지도와 인생지도의 공통점

“방황한다고 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

 -프랑스의 철학자·극작가 가브리엘 마르셀-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하면 낯선 곳이라 지도를 보게 된다. 종이지도나 스마트폰 지도 앱을 통해 내 위치를 찾고, 목적지의 위치를 찾는다. 그리곤 거리에 따라 어떻게 갈지 방법을 정한다. ‘아이 교육’을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으로 생각해 보면 지도를 보는 법과 다르지 않다. 아이의 현재 위치를 찾고,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한다. 어떻게 갈 것인지 루트와 방법을 결정하는 일만 남는다.



지도를 보는 방법은 내 위치와 목적지를 찾고 어떻게 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삼척, 변산반도, 영광, 통영, 여수, 완도 등 지방여행을 다닐 때마다 아이에게 지도를 주어왔다. 초행길의 길 찾기 뿐 아니라 지방의 특징, 특산물, 볼거리, 축제 정보 등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았다. 아이도 식당 명함이나 브로슈어 모으는 걸 좋아해서 차에 지도가 한 가득이곤 했다. 처음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우리는 지도를 펼친다. 목적지를 정하고 찾기도 하고, 어디를 가볼지 목적지 자체를 찾기도 한다. 목적지 이외에도 지도를 보는 방법은 아이 교육과 인생을 살아감에 본질적인 도움을 준다. 지도를 보는 세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현재의 ‘내 위치 찾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를 볼 때 목적지부터 찾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의 내 위치는 과거 내가 있었던 곳이나 곧 있을 장소가 아닌, 현재 지금(right now) 있는 곳이다. 즉,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과거 얘기만 하는 것은 현재의 내 위치를 과거에 갖다 놓는 것이다. 자신이 있고 싶은 미래 얘기만 하는 것 역시 자신의 위치를 왜곡하는 것이다. 게다가 내 위치의 인식을 2D가 아닌 3D(입체)로 바라보면 한 가지 또 다른 인식이 생긴다. 높이에 대한 인식이다.


도시나 관광지 지도에는 거의 없지만 구릉이나 산이 있는 지형의 지도에서는 선의 간격을 통해 높이를 표현한다. 최근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3D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3D 개념으로 전환하면 주위의 모든 건물들이 그 높이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인다. 지도의 동서남북의 방향뿐 아니라 고저, 즉 우월적 위치나 부유한 위치 등 높이에 대한 인식이 더해지는 것이다. 인생에서 객관적인 높이 인식은 자기반성과 자기 객관화에 크게 도움이 된다. 게스트와 호스트의 차이, 여행자와 거주자의 입장 차이 같은 것이 높이 인식의 좋은 예다. 여행과 인생에서도 첫 번째는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갈 곳(목적지)을 찾기’이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갈 곳들이 정해져 있다. 유명한 곳, 꼭 가보아야 할 곳,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관광지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이나 구글 지도가 어디쯤이고, 얼마나 걸리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배경이 여행지가 아니라 인생과 삶의 지도라면 어떨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 인생의 지도에서 ‘갈 곳이 있는가?’, ‘갈 곳은 있지만 진정 원하는 곳이 맞는가?’, ‘갈 곳을 진짜 가고 싶은가?’ 자기 자신 내면의 자아에게 한 번 더 물어보아야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이후의 모든 행동들에 투입될 시간, 노력, 비용, 애정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세 번째는 ‘가는 방법과 루트’ 결정하기이다. 다양한 길과 수단들 중에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이다. 결국은 내가 원하고 중요시 여기는 기준으로 방법과 루트를 선택한다. 내게 시간이 중요하다면 최단시간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비용이 중요하다 싶으면 최소비용으로 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고민하지 않고 안전하게 가고 싶으면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걸 따라간다. 선택은 사람마다 기준과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 비용, 스타일, 선호도 등의 조합의 결과다. 중요한 건, 자신의 기준과 우선순위가 제대도 반영된 선택이냐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가는 길이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의심 없이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학원이 추천해주니까 최적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날로그 지도를 통해 나만의 지도를 만들자

     

아이와 둘이 한라산 백록담을 보기 위해 제주도로 갔을 때다. 나는 어디든 처음 방문하는 터미널이나 공항에 가면 지도부터 챙긴다. 제주공항에서도 수많은 지도들을 챙겼다. 렌터카를 빌리고,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 후에 아이에게 지도를 보여줬다. 우리 위치부터 찾고, 다음 날 오를 한라산 백록담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백록담으로 오르는 다양한 루트 중에 아이의 나이와 체력에 맞는 적당한 코스를 대화하며 선택했다. 제주도라는 전체 섬에서 한라산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빅 픽쳐 관점에서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지도의 현재 위치에서 선택한 코스를 따라 선을 긋고 가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한라산에 입산해서 백록담에 오르는 동안에는 중간중간 나무로 된 현재 위치 지도가 있었다. 등산지도라 높이를 나타내는 고도 표시도 있어 아이에게 입체적으로 가르쳐주기에 좋았다. 하산해서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그 날 이동하고 걸었던 코스를 아이와 함께 지도에 정리했다. 지도에 직접 선으로 그어보니 아이는 “아빠! 우리가 오늘 이만큼이나 걸었어?”하고 놀란다. “그럼, 그리고 이 길들은 찬희와 아빠가 오늘 만든 우리만의 여행루트가 된 거야!”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직접 손으로 긋고 낙서한 지도라 소중하다며 아이는 다시 접어서 자기 가방에 넣었다. 우리 집에는 아이와 함께 낙서하고 표시한 국내외 지도들이 책장 한쪽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어따ᅠ간 여행지들은 너무 좋아서 여러 번 간 적이 많은데, 그때마다 낙서된 아날로그 지도는 최고의 가이드북이 되었다. 디지털 지도였다면 모두 기억에서 없어져버렸을 소중한 추억의 재산인 것이다.

아날로그 지도는 디지털 지도에 비하면 느리고 불편하다. 디지털 지도는 내가 찾지 않아도 목적지만 입력하면 몇 초 만에 모든 걸 찾고, 가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우리가 위급상황이라 빨리 가야 하거나 시간이 중요한 때에는 시행착오가 적은 디지털 지도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 교육이라면 관점을 달리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지도 보는 법을 가르쳐줄 때 스마트폰 앱으로 가르쳐 주는 것은, 지도 보는 법이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교육과 관련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빠름보다 기다림이 우선이다. 시간이 걸려도 아이 스스로 해보고 깨닫도록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주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오감을 통해 스스로 경험해 본 것만이 기억에 남고 자기 것이 된다. 빠르고 편한 것은 그때에는 좋으나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이 없다.


여행을 통해 아이가 인생지도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자

     

아이가 지도 보는 법을 익힌 후로는 여행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은 아이의 몫이 되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꽤 먼 거리인 올드타운과 뉴타운을 오갔었다. 그때도 종이지도를 보며 아이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길을 찾아다녔다. 가끔 헤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더 책임감을 가지고 지도가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덕분에 지금도 그 길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는 스쿠터로 아름다운 메콩강 유적지와 도시 전체를 골목골목 돌아다녔다. 스쿠터로 갔던 길들을 지도에 표시하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도 지도를 보고는 우리가 도시 전체를 둘러본 것에 어깨가 올라가기도 했다.


지도에 내가 간 길과 갈 길들을 표시해 보면 금방 깨닫게 된다. 블로그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남들이 좋다고 한 길을 따라만 간 것인지 내가 새로 개척한 것인지. 맛집도 남들 얘기만 듣고 찾아간 것인지, 내가 시행착오를 거쳐 직접 개척한 것인지 보인다. 여행지도에 스스로 낙서해가며 나만의 여행지도를 만들어가는 경험은 아이가 자신만의 ‘인생지도’를 그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아이가 자신의 인생지도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부모는 아래 두 가지를 잘 가이드해야 한다.

하나는, 아이 스스로 인생의 목적지를 정하게 해주는 것이다. 인생지도에서 목적지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어릴 때부터 여행과 지도를 통해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찾고, 만들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꿈에 대한 인생의 목적지는 자신이 노력해야만 찾아갈 수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다.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해도 ‘하고 싶은 게 없다.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청년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취업한 신입사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가 목적지를 정해주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아가는 여정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또 하나는, 아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추진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가는 방법과 루트 역시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방법을 찾으면 설령 힘들어도 끝까지 견뎌낸다. 하지만 스스로 주도하고 원해서 가는 방법과 루트가 아니면 작은 시련에도 견디지 못하고 실패한다. 미국 콜럼비아대학의 사무엘 김(Samuel Kim) 박사가 20년 간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했던 한인 학생들 1,400명을 조사했었다. 놀랍게도 졸업한 사람은 56%에 불과했고, 나머지 44%는 중도에 탈락했다. 학생들 스스로 진정 가고자 했던 유학이라면 저렇게 많은 학생들이 중도에 포기할 리가 없다. 맞는 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길, 스스로 책임지고 추진한 방법이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지도에 선을 그어본 아이는 자신의 인생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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