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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ki May 31. 2020

“맥가이버 여행법”

지금 현재의 조건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거대한 프로젝트부터 시작하지 마라. 지금 당장, 당신이 가진 자원(닌텐도의 첫 번째 사운드칩 같은)으로 성취해낼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 -쿠타라기 켄(소니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전 회장이자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


준비를 완벽하게 하려고하면 할수록 시작이 늦어지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인생은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기가 힘들다. 충분히 준비할 만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현재의 조건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당장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맥가이버처럼!


완벽한 준비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와 둘이 태국으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태국 북쪽 치앙마이에서 버스로 3시간을 더 들어가면 ‘빠이’라는 시골 오지마을이 나온다. 그 곳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유럽 배낭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로부터 멀지않은 곳에 자연온천계곡이 있다고 들었다. 평소에도 온천을 좋아하던 아이와 나는 고민 없이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그 곳으로 달려갔다.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약 한 시간가량 산길을 달려가니 정말 자연온천계곡이 나왔다. 따로 매표소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머리색깔이 다양한 유럽여행자들이 몇 명 와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 수영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와 나는 사전정보가 없이 얘기만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갔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갔었다. 수영복은 커녕 갈아입을 옷이나 수건조차 없었다. 주변엔 매점이나 탈의실 등 한국에서 익숙한 그 어따ᅠ간 서비스시설도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천연’ 그대로의 자연온천계곡이었다. 수영복 때문에 되돌아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곡물에 누워있는 유럽여행자들을 보며 나는 10초간 고민했다.

평소 집에서 무언가를 고치거나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마다 아이에게 ‘맥가이버 정신’이라고 명명하며 행동을 해왔다. 그 순간 머릿속에 맥가이버 정신이 다시 떠올라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찬희야! 맥가이버 정신 기억하지? 우리 맥가이버 방식으로 하자!” 그리고 아이 앞에서 자연스럽게 온천계곡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당시 아이와 나는 태국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코끼리바지(코끼리가 프린트되어 있는 매우 얇은 소재의 고무줄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있었다. 나는 원래 그런 것 마냥 자연스럽게 계곡물로 들어갔다. 자연스러운 행동하는 아빠를 보고 아이도 곧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아이와 나는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캬아~” 정말 신기하게도 그 자연계곡물은 뜨거운 온천물이었다.


한 시간가량을 기분 좋게 즐기다가 나와서 아이와 나는 서로의 젖은 몸을 바라봤다. “아빠! 어떻게 하지? 우리 수건도 없는데..” 아침에 오토바이를 타고 오던 산길에 바람이 적당히 불던 것이 상기되었다. “찬희야! 우리 끝까지 맥가이버로 가자. 타라! 가다보면 마를 거야~.” 우리는 대책 없었지만 쿨하게 오토바이에 올랐다. 정말 신기하게도 오토바이를 탄 지 30분이 채 안되어 우리 몸은 완벽히 말라 있었다. 수영복도 수건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맥가이버 정신’으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세상은 우리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중에 언젠가 해야지 하면 늦는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바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잡지에서 우연히 보았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광고가 이를 함축적으로 잘 말해준다.

“I’ll do it some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hursday, Friday, Saturday, Sunday.

See? There is no Someday.

“언젠가는 하고 말 거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보이는가? ‘언젠가(Someday)’란 없다.



디지털 시대의 인재상은 창의융합형 맥가이버다

     

맥가이버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맥가이버칼(스위스 빅토리녹스 나이프로 캠핑할 때 많이 쓰는 멀티툴)은 익숙하게 알고 있다. 맥가이버는 80년대 후반에 TV에서 시리즈물로 방영했던 미국 첩보물 드라마다. 총과 최첨단 무기가 난무하는 첩보물들 사이에서 맥가이버칼과 은색테이프만으로 적을 물리치는 독특한 캐릭터로 유명했다. 물리학도 출신 맥가이버는 일상의 도구들을 다르게 사용하고 합쳐서 전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냈다. 은박지에 바나나와 초코바를 합하고 세제를 부으면 강력한 폭탄이 되었다. 전자레인지에 달걀과 합성세제를 돌리면 시한폭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했기 때문에 맥가이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자신의 분야에 능통했던 맥가이버는 유연한 사고와 협업마인드로 뛰어난 소통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매 순간 현재의 조건으로 말보다 행동으로 해결해 나가는 승부사이기도 했다.

우리의 아이들이 장차 커서 살게 될 디지털 시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빅데이터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데이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혼자서 할 수가 없다. 사람들과의 협업능력이 중요하다. 전혀 다른 영역의 데이터들을 통합적으로 다뤄야 하고, 인공지능(AI)의 도움도 필요하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 또는 AI와 일하기 위해 유연한 사고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데이터들에 대해서 매 순간 판단하고 대응해야 한다. 바로 현재조건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창의적이면서도 유연하게 타인과 함께 협업할 줄 아는 인성을 가진 자! 준비나 계획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조건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바로 행동으로 실행하는 사람. 앞으로 다가 올 시대에는 맥가이버 같은 인재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본다. 만약 맥가이버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한국학생으로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면 어떨까?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그의 능력은 다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언어영역을 예로 보자.


①창의성 : 대학입시 수능의 언어, 외국어영역에서 학부모들이 간과하는 오픈된 비밀이 하나 있다. 시험 제시문의 예시들이 교과서나 기존예문에서 나올 확률은 0%라는 것이다. 맥가이버 학생은 이를 위해 교과서가 아닌 기본 교양서들과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창의적 마인드를 키울 것이다.


②전문성 : 수능 언어, 외국어시험에서 중요한 역량은 읽고, 생각하고, 논증하는 독해, 추론, 논증능력이다.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어야만 새로운 지문과 처음 보는 내용들도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풀어낼 수 있다.


③협업능력 : 전 세계의 중고등학교 성적표의 평가방식을 비교해보면, 두 나라만 제외하고 모든 국가가 절대평가체계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만이 경쟁을 기초로 한 상대평가제도라는 것이다. 경쟁을 기초로 한 수업에서는 협업을 할 수가 없다. 친구를 이겨야만 자신이 올라갈 수 있고 1등만이 최고인 것이다. 맥가이버 학생은 그룹식 토론을 통해 서로를 도와주는 학습방식으로 공부할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과학영재학교를 운영한다. 아이가 매 주 한 번씩 배우고 오는데, 하루는 희한하게 생긴 걸 만들어 왔다. 간단한 몇 가지 재료와 달걀을 주고 2층에서 떨어뜨리는 실험이었다. 목표는 달걀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젓가락과 테이프 등으로 달걀이 깨지지 않도록 보호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아이는 조원들과 함께 주어진 재료와 시간 내에서 ‘맥가이버 정신’을 활용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몇 번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견고한 보호시스템이라고 자랑을 했다. 맥가이버가 어린 시절에는 이러면서 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통해 익숙해진 맥가이버 정신이 학습에서도 발현된 것 같아 듣는 내내 흐뭇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심정이다. 그 안에는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최근 기업들은 맥가이버 인재를 원한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과 예측 불허한 상황들이 복합하게 얽힌 환경에서 생존의 싸움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전문성은 기본이고, 창의적 응용력과 협업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요구한다.


몇 년 전 회사에서 공채신입사원 2차 면접관으로 며칠 동안 면접을 진행한 적이 있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유능한 신입사원 면접생들이었다. 블라인드면접으로 학교 및 학력에 대한 정보 없이 진행된 단체면접이었다. 나는 창의성과 유연함을 최우선순위로 보기 위해 조금 색다른 질문들을 던졌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구에는 몇 개의 주유소가 있습니까?’처럼 정답이 없거나 알기 힘든 질문들이었다. 외우거나 준비한 것으로는 짧은 시간 내에 답변할 수 없는 논리적 접근과 창의적 사고를 묻는 질문이었다. 자기소개를 4개 국어로 외어온 면접생도 있었다. 진짜 실력이 궁금해서 2개 국어로 의외의 질문을 했더니 면접생은 못 알아들었는지 한 마디도 답변하지 못했다. 

자기만의 색깔로 빛나던 면접생도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협업해서 전공분야 대회에 나가 학점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100만원의 종자돈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해서 2천만원까지 벌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스펙의 나열이 아니라 도전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창의적인 해석과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최종 합격후보자로 선정하고 서류를 확인하고 나서 면접관들 모두가 놀랐다. 스펙 적은 지방대출신에 다양한 실패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입을 통해 좋은 대학으로 가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조건 내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결국 그 면접생은 스펙이 화려한 스카이대학과 해외 유수대학 출신들을 제치고 최종합격했다.


한국역사에는 뛰어난 맥가이버 인재들이 많았다. 그 중 기업가 故 아산 정주영 현대회장은 가장 대표적인 맥가이버 기업가였다. 1952년 1월 유엔군 사절단이 유엔군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당시 묘지는 황량한 흙밭이었다. 참배일까지 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군은 묘지단장을 파란 잔디로 덮기를 원했다. 모든 건설사가 고개를 저을 때 아산 정주영회장만이 ‘예스’를 불렀다. 엄동설한에 파란 잔디를 구할 수 없었지만 정회장은 묘안이 있었다. 잔디처럼 파랗게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겨울에도 싹이 돋는 파란 보리싹을 낙동강변 보리밭에서 사들여 옮겨 심었다. 단 며칠 만에 묘지가 파랗게 변하자 미군은 ‘원더풀’을 외쳤고, 이후 현대건설은 미군공사를 거의 독점할 수 있었다. 매 순간 현재의 조건에서 행동으로 옮기고 해결했던 아산 정주영회장은 뛰어난 맥가이버 기업가였다.


여행을 통해 우리 아이를 맥가이버 인재로 키우자!

     

맥가이버는 주어진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해결방법을 찾아낸다.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의 조건에서 바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다가 올 시대에 꼭 필요한 응용력의 대가 맥가이버, 우리 아이도 맥가이버처럼 키울 수 있다. 맥가이버여행법을 통해 지금부터 차근차근 맥가이버 인재로 키워보자.

첫 번째 방법은 ‘부모의 모델링’이다. 여행은 다가올 디지털 시대처럼 갖가지 예측불허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모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나서 아이에게 작은 팁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외국어라면 말할 문장을 최대한 쉽게 하고 반복해서 외우도록 해준다. 그러면 어느 순간이든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있다. 손짓을 덧붙이게 해주고 부모가 먼저 하면서 따라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아이의 적응훈련’이다. 부모가 시범을 보이고 나면 아이가 직접 해볼 수 있도록 작은 것들부터 기회를 준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묻는다든지, 먹을 것을 사본다든지 비교적 쉬운 것부터 시작한다. 그 후 조금씩 크고 어려운 것들로 옮겨간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하고 예상을 뛰어넘게 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아이는 언어라든가 역사, 사회, 지리 등 기본지식과 전문역량이 필요함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여행의 이런 과정은 아이의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동기부여를 제공해 준다.


세 번째 방법은 ‘부모의 기다림’이다. 아이가 아무리 못하거나 못하겠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기다리고 응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개입하거나 중간에 대신 해주면 안 된다. 아이는 언제든 울거나 보채면 ‘부모가 해준다.’라고 뇌에 입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한 번이 어려울 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문턱이 바로 첫 번째 문턱이다.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부모는 믿으면서 응원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해냈을 때, 바로 그 때 나아가 두 팔 벌려 힘껏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맥가이버의 프로페셔널한 전문성과 소통능력, 행동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여행을 통해 조금씩 경험하고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험을 통해 필요함을 느끼기만 하면,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모든 걸 하게 된다. 맥가이버 여행법을 통해 낯선 곳에서 소통하는 법을 배우면 커서는 뛰어난 협업능력을 갖게 된다. 여행의 매 순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결정하면 커서도 의사결정을 잘 하게 된다. 나는 아들에게 음악적 재능(악기하나 다루기)과 스포츠 실력(운동종목 하나)은 최소 몇 년 이상은 꾸준히 하도록 권유한다. 어떤 분야든 약간만 높은 전문성을 가지면 세계 어디서든 돋보일 수 있고 쉽게 어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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