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할아버지 #2
이 글은 3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캠핑을 그리워하는 12살 아이의 관점으로 쓰였습니다.
심통쟁이 놀부
우리 할아버지는 “심통쟁이”다. 젊어서도 그랬는지 할아버지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놀부란다. 할아버지는 꼭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 맛없다”라고 말하면서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그리고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아우 맛있어. 너도 먹어봐~”라고 권한다. 이걸 믿고 먹었다 가는 인생의 쓴 맛을 보게 된다. 내가 이걸 눈치챈 이후로 할아버지는 작전을 바꾸어 나를 헛갈리게 했다. 맛있다고 해서 안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억울했거나 반대로 맛이 없다고 해서 먹었는데, 진짜 맛이 없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가끔 선물을 주겠다 거나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것처럼 나를 부르곤 했는데, 막상 가보면 늘 내 얼굴에 방귀를 뀌었다. 그땐 너무 싫었는데 요즘엔 내가 엄마한테 이 방법을 써먹곤 한다. 할아버지가 왜 좋아했는지 알겠다. 뭔가 그간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엄마한테 당한 것을 되갚아주는 기분이 들어 통쾌하다.
돼지 두 마리, 꿀꿀
할아버지는 나랑 동생을 돼지라고 불렀다. 세 살 터울인 나와 동생의 태몽이 돼지였는데, 나는 집 마당을 뛰어다니던 황금돼지였고 동생은 누군가가 할아버지에게 선물한 멧돼지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우리는 서로를 보면 '꿀꿀'이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통통한 똥똥돼지, 날씬한 동생은 삐쩍 돼지. 내 동생은 학교에서 자기를 ‘최돼지’라고 소개한다. 돼지보다는 멸치가 더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고 자길 돼지라고 부르니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날을 달력에 돼지 두 마리로 표시해 두었고, 우리 가족 사진에서 나와 동생 코를 매직으로 돼지코를 그려 두었다.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날도 우린 꿀꿀로 인사했다. 전화로 기분 좋은 듯 사랑한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난 대답했다.
“꿀꿀”
엄만 대체 그게 무슨 대답이냐고 했지만 이 말은 모든 말에 대한 대답이다.
그날의 대답은 “나도 사랑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