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할아버지 #4
이 글은 3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캠핑을 그리워하는 12살 아이의 관점으로 쓰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산만큼 바다도 좋아했다. 물론 바다는 긴 시간 운전을 해야만 만날 수 있다 보니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물속을 수영하는 시원함과 해방감 같은 걸 사랑하셨던 것 같다.
여름이면 할아버지와 바다로 캠핑을 가기도 했다.
무인도에서
할아버지는 고무보트를 운전하셨다. 우린 보트를 타고 아무도 없는 섬에 가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어디든 사람이 많은 걸 싫어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늘 보트에 텐트와 먹을 것을 잔뜩 싣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 같은 섬에 찾아갔다. 한 번은 서해로 갔는데, 배를 타려고 갯벌을 걸어가는데 발이 쑥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발을 빼려 해도 발은 더 깊이 들어가기만 했다. 애를 쓰다가 발을 겨우 뺏는데, 발만 나오고 장화는 뻘에 박혀 있었다. 이런 날 보면서도 할아버지는 그냥 가버렸다. 알아서 발을 빼 보라면서.. 씩 웃었다. 장화를 두고 갈 수도 없고 할아버지가 가버릴 까봐 무서워서 엉엉 울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친구가 와서 날 구해줬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할아버지는 보며 그저 웃기만 했다. 정말 나빠. 정말 나쁜 할아버지다.
하지만 그날 무인도 여행은 발이 빠진 것 빼고는 정말 좋았다. 섬에서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녀도 눈치 볼 사람도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다. 지나가는 어선에서 산 해산물도 배 터지게 먹었다. 할아버지 친구는 게를 정말 좋아하는데, 혼자 10마리는 먹은 것 같았다. 나는 온 해변을 내 집 인양 돌아다니며 놀았다. 그중에서도 섬에서 주운 삽을 모래사장에 꽂고 파도를 피해 도망가는 놀이는 정말 재미있었다. 파도가 친 후 물이 빠지면 그 사이에 전력으로 달려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삽을 꽂고 파도가 다시 밀려 들어오기 전에 도망 나오는 놀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새 물이 차올라 낮에 꽂아 둔 삽을 가지러 가기 어려울 만큼 깊어져 있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난 어제 물에 빠진 삽을 찾으러 텐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닷물이 모두 빠진 자리에 다른 것은 그대로였지만 삽은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 이 섬에 왔을 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어떻게 삽이 있는지 의아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삽은 물살을 타고 나처럼 함께 놀아줄 아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는지도 모르겠다.
문어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스쿠버다이빙도 하셨는데, 문어를 만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바다 다이빙을 하는데, 같이 들어간 친구 물안경이 망가져서 할아버지가 자기 거랑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망가진 물안경의 끊어진 부분은 한 손으로 잡고 바닷속을 수영하고 있는데 눈앞 돌 틈에 문어가 숨어있었다고. 문어를 잡으려고 남은 한 손으로 다이빙 칼을 들고 휘둘렀는데 영리한 문어가 칼을 빼앗아 도망갔다고 한다. 뛰는 할아버지 위에 나는 문어다.
그 문어는 할아버지에게서 훔쳐간 칼로 무엇을 했을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하면서 증거로 보여줬을까? 아니면 그 칼로 그 동네 짱이 되었을까? 아무튼 나는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문어에게 칼을 뺏긴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아주 고소하다. 그동안 맡은 지독한 방귀냄새가 조금 옅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알려 달라고 했는데, 할아버지 말이 고등학생은 되어야 할 수 있다고 했다. 폐가 다 자라야 한다나? 다른 때는 신경도 안 쓰면서 왜 이런 재밌는 건 날 걱정하며 늦게 하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도 할아버지 심통인가? 정말 이 말을 믿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