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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치미 Mar 24. 2023

애들이 유치해

초등학생 육아일기 (10) #초등학생 사회생활 #교우관계

작은 아이가 웬 일로 저녁 8시에 잠을 자겠다고 한다.

평소엔 10시가 넘어도 기운이 펄펄 넘치는데.. 별 일이다.


지금은 9시.. 그럼 그렇지, 바로 잘 리가 없다.

한참을 이불속에서 조잘거리며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넌지시 묻는다.

"요즘엔 누구랑 재밌게 놀아?" 

아이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한다.

"없어. 같이 놀아서 재미있는 친구가 없어."

"00 있잖아?

"개랑 절교했다니까."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 다녀온 학급설명회 사진마다 그룹에서 동떨어져있던 아이가 마음에 걸려 물어본 질문이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물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돌이 떨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떨어진 돌에 놀라지 않는 것은 아닌가 보다.


"왜 친구들이 재미가 없어?"

"몰라 그냥 유치해. 재미가 없어" (보통 잘 못 어울릴 때 이렇게 말한다. '애들이 유치해서 그래'라고)


아이도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어렵겠지.

아이 말에 따르면 다른 친구가 노는데 맞춰서 놀려고 노력도 해봤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 어떻게 억지로 재미가 있을 수 있겠니'


"작년에도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고 했다가 다시 놀게 되었잖아, 기억나?"

"응 근데 그때는 원래 놀던 친구들이랑 다시 논 거고, 베프인 00가 있었잖아."

"아직 새로운 반 된 지 2주밖에 안 됐으니까 발견하지 못한 걸 거야. 어디선가 반짝이고 있을 재밌는 친구를"

"언제 발견하는데? 내일?"

"아니, 그건 얼만지 알 수가 없지. 한 달이 될지, 내일이 될지 말이야"

"치, 그럼 내일도 학교가 재미없다는 말이네."


매일 아침 이불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엔 이게 있었구나.

일찍 잤는데 왜 꾸물거리나 생각했는데, 흔쾌히 일어나서 가고 싶지 않았던 거구나.


그래. 얼마나 재미없겠니. 학교가 노는 재미가 얼마나 큰데, 그게 지금 없다니..

안쓰럽고 걱정되고 속이 상하지만, 내 역할은 여기까지. 아이의 사회생활을 난 그저 지켜볼 수밖에.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이가 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느낀다.

혼자 당당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도록 내가 단단하게 키웠기를.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우리가 곁에서 충분히 지지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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