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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Dec 03. 2021

29살의 대장 내시경 -어진

born in 1993.08.10


20 마지막 건강검진, 나는 용맹하게 대장 내시경을 신청했다. 지난 29년간 한결같이 맵고 뜨겁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던, 특히나 최근 10년간은 거기에 알코올을 곁들인, 불닭볶음면의 빠알간 소스처럼 불꽃같은 식습관을 갖은 자의 판도라의 상자 개봉식이었다.


2년마다 돌아오는 건강검진은 늘 묘한 긴장감을 준다. 물론 별일 없었지만, 물론 별일 없을 테지만, 만에 하나 혹시 아주 호오오옥시..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런저런 불길한 징조들과(왠지 요즘 따라 몸이 붓고 피로한데 나 설마 갑상선에 문제 있나) 정보에 바다에서 맞닥뜨린 무서운 통계들(아니 젊은 여성 췌장암 환자가 늘고 있다니), 그 모든 불안들이 합쳐져 지난 몇 년간의 나는 어떻게 살았더라, 하며 삶을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과 만나는 자리도 좋아한다. 각자의 궤를 그리며 살았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겹치다니!! 하며 새로운 사람과 호들갑 떨면서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알아 가게에 앉자마자 "일단 맥주 500 두 잔이요." 하는 만남도, 어색함과 긴장감이 감도는 단체 모임도, 그간 어떻게 살았냐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자리도. 끊임없는 약속과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살았다. 그 사이사이 나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이 생기면 더없이 소중했다. 어떻게든 그 혼자만의 시간을 잘 써보려고 했다. 혼자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뛰고, 등산하고, 여행도 가고, 딱히 혼자인 것이 전혀 무료하지 않던 날들이었다.


그 모든 만남들은 '코시국' 세 글자 앞에서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1.5룸 자취방에 덩그러니, 나와 나만 남게 된 것이다.


자취를 시작한 지 햇수로는 8년 차. 바야흐로 기숙사 시절부터 따지면 나름의 독립생활을 시작한 지 10년 차에 도달한 29살의 어진 이건만, 나의 정신적인 독립은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신생아라는 것을 덕분에 깨달았다.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내 속에 여러 의미로 자리하며 나를 만든 것은 분명하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타인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을 방패 삼아 막상 내가 나 자신과 서먹한 사이란 것을 눈 감고 있었음을 드디어의 드디어 눈치챈 것이다.

안온한 눈가림이었다. 나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는 너무나도 어색하고 영 모르겠는 사람이었다. 어진, 그래서 지금 뭘 하고 싶어?(모름) 피곤하진 않아?(진짜 모르겠음) 배는 고파? 뭘 먹을까? (정말 모르겠음. 메뉴를 정하는 일은 최고로 어려운 일이다.) 늘 아리까리한 것이다. 이렇게 나에 대해 모를 수가. 배려라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나의 결정권을 떠넘기고 있었구나, 하고 아차 싶었다. 물론 상대방의 제안은 정말로 좋았고 내가 제공한 선택지 중 그 어떤 것이 선택되어도 무방하였으나 계속 이렇게 살다 간 평생 마지막 한 발짝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내가 그렇지 않았으면 했다.


큰 깨달음을 얻었으나 딱히 대단히 바뀔만한 것은 없었다. 어색한 사이에서 관계를 성급히 진전시키려 애써봐야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것을 배운 날들이 있었으니. 다만 내 욕망이, 마음속 깊숙한 곳의 날 것 그대로의 어진이 0.000001이라도 더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이제야 아주 조금,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이것만큼은 싫은 것, 누가 뭐래도 난 그렇다는 것, 그런 나의 감정과 생각들, 선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을 하는 나를 지지하고자 한다.


결국 나를 어르고 타일러 삶을 살게 하는 사람은 나이기에, 나는 이 친구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가끔은 마라샹궈와 맥주로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하고, 가끔은 운동 3개를 저글링 하듯 돌려 잡생각에서 멀어지게 하고, 이렇게 용맹히 대장내시경을 신청하여 앞으로의 음주가무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뭣도 모르고, 가볍고 무책임하게 “30 되기 전에 대장 내시경이나 해볼까~” 하며 신청했던 나 자신도 포용하는 것이다. 다음날 해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대장 내시경 식단 조절 전 마지막 만찬이라며 만취한 후 빨간 국물을 그리워하며 간장 계란밥으로 해장하는 나도, 고기, 김치, 야채, 견과류, 버섯, 해조류, 하다못해 커피마저 제한해야 하는 식단은 생각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신청해버린 나도, 검사 전날 약을 먹고 온 저녁 내내 화장실에서 뿜어내던 나도, 자다가도 화장실!!!!!!! 하며 눈이 번쩍 뜨여 외항문 괄약근이 수의근임에 감사해하던 나도, 모두 내가 알아가야 할, 내가 보듬어야 할, 내가 끌고 가야 할 나이기에.


울면서 식단 조절을 했던 덕분인지 장은 아주 깨끗하게 검사를 맞이할 만한 상태였고, 다행히 별다른 이상도 없는 건강한 대장이었다. 프로포폴을 맞고 20분 정도 푹 자고 일어난 나는 흡사 알에서 갓 깨어난 앨버트로스처럼 비장하게 다짐했다. ‘시발, 40 되기 전엔 대장 내시경 하지 말아야지.’


아마도 39세의 대장 내시경은 지금과는 영 다른 고민들과 함께 일 것이다. 아니, 사람은 바뀌지 않으니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을 수 있겠다.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나의 중심을 잃지 않는 여정이 되길. 그리고 대장내시경 4일 전에는 꼭 과음하지 않는 자제력을 갖춘 나이길.



30 ± 1,

[스물 아홉의 대장 내시경]

written by EO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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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h53m      (취미계정)

어 진, born in 199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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