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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Mar 20. 2023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자아를 찾고 있는 당신에게

전성기.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빛났을 때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전성기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지금은 흐릿해진 초롱초롱한 눈을 무기로 어느 누구에게 안겨도 울지 않아 모든 어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3살이 첫 번째 전성기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두 번째 전성기가 찾아옵니다. 대학 입시였습니다. 6년 동안 SKY라는 이름에 끊임없이 세뇌를 당한 탓인지, 좋은 대학이라는 타이틀은 경기도 어딘가 평범한 중산층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멋' 그 자체였습니다.


딱히 미래에 뭐 해 먹고살지는 고민을 안 했습니다. 고등학생에게 그러한 고민은 사치였기 때문이죠. 수업 시간에 졸린 눈을 비비다 칠판 옆 수행평가 게시판을 보고 영어 프레젠테이션 평가가 내일모레라는 걸 알아차리면 온갖 잡념이 싹 사라지는 경험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닙니다. 당장 쉬는 시간에 노트북을 키고 작년 이맘때쯤 했던 주제를 살짝 바꿔 파파고에 입력합니다. 이 친절한 앵무새는 제 10년간의 영어 공부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단 2초 만에 고급스러운 어휘들을 중간중간 넣어가며 완벽한 스크립트를 만들어줍니다. 밤늦게까지 화장실 변기에 앉아 거울을 보며 뭔가 있어 보이는 제스처들을 섞어 연습하면 완성입니다. 부족하다 싶어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울리는 기상송에 맞춰 일어나 눈곱만 떼고 꼬깃꼬깃해진 스크립트를 손에 든 채로 둘레길을 돌면 되기 때문이죠. 매일 내일의 나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저에게 10년 뒤의 나는 너무 먼 미래였습니다.


자, 3년 동안 당신은 내일의 당신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러고 대체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대학을 갔습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합법적인 음주, 흡연과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삶이 시작됩니다. 저 역시 갑작스레 맛본 새로운 경험과 시간들에 휩싸여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만끽했습니다. 학교 이름만 대도 알아서 들어오는 과외에, 사돈의 팔촌까지 타고 타고 들어오는 축하 소식, 간혹 만나는 어른들의 대견하다는 눈빛까지.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대학생으로서 느끼는 감정들과 시간이 무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학교의 학생인 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고 세상에 조금씩 눈을 뜨면서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기 시작한 뒤로는 학교 이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알바몬에 이력서를 적을 때도 특기는 '뛰어난 서비스 정신'을 적어놓고 그나마 채울 수 있는 최종학력에 학교 이름을 적어두는 것이 전부였던 저는 어느 순간 대학 입시가 선사하는 전성기는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의 시대를 이어가긴 위해선 새로운 성과가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전성기를 최대한 빨리 얻어내기 위해선 힘겹게 들어간 대학을 어떻게든 이용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밀어주는 고시 공부든 스타트업이든 학교와 나를 어떻게든 연관시켜야 됩니다. 이 22살의 어른은 지난 1년 반 동안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비해 대학 이름과 소주 한병이라는 주량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죠. 최대한 빠르게 새로운 전성기를 열기 위해선 학교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가 제공하는 것들은 꽤 많았습니다. 각종 프로그램부터 동아리와 학회, 졸업한 선배와의 만남까지 이래서 대학 대학 하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찜찜했습니다. 학교란 그림자에 제가 자꾸 가려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주워 먹던 기회들도 학교란 존재를 지우고 생각해 보면 절대 얻지 못할 기회들이 많았기에 제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고 학교 없이도 내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라는 타이틀을 놓기 무서워 어떻게든 그들이 정해 놓은 자격을 갖추려고 제 관심사와는 전혀 다른 자격증을 따고 기사를 읽었습니다.


 제 모습에 싫증이 났습니다.


학창 시절을 되돌이켜 보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노력했지만 회의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대학에 가고 싶었고, 멋있어 보였고, 갈망했습니다. 대학에 가라는 주위 의견보단 내가 정말로 대학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과정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뿌듯하긴 했습니다. 공부는 대학을 간절히 갈망하는 오직 저를 위한 결정의 과정이었고 운이 좋게도 주위의 바램과 저의 욕망이 일치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22살의 내가 걷고 있는 이 과정은 나를 위한 결정의 과정이 아닌 그저 주변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 부모님의 자랑이 되겠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어떻게든 빨리 성공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는 다짐은 어른이 됐다 할지라도 대학에 목숨을 걸었던 고등학생 때와 비교하면 쉽게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게 뭔지 찾았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학교를 성공의 도구로 무조건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마음속에서 지웠습니다. 어떻게든 끌고 가야지라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 온전한 모습의 나에게 집중해 보는 중입니다. 원래 무엇을 좋아했는지, 하고 싶은 건 뭐였는지 곰곰이 생각하니 전에 비해 부담도 조금씩 덜어지고 있습니다. 꼭 영광의 시대를 만들지 못해도 빨간 머리 강백호처럼 그냥 하루하루 지금의 순간을 영광의 시대라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고 있는 중입니다.  


3년 동안 그토록 바라왔던 학교를 마음속에서 비워내니 홀가분하기도 하면서 매일같이 사용하던 지하철 노선이 갑자기 없어진 느낌입니다. 그래도 마냥 좋습니다. 넓게 펼쳐진 공원에서 어디로 갈진 모르겠지만 생각할 시간이 많은 요즘이기에 즐겁게 방황하고 있겠습니다. 숨겨진 맛집을 찾는다면 더더욱 좋을 거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학교를 싫어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로운 만남과 공연의 추억, 5월의 축제와 9월의 고.전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학교에 싫증이 나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고 저를 빼고 놀러 가신다면 글을 좀 과격하게 쓴 제 잘못이 큰 거 같습니다. 그런 생각 하지 마시고 연락 주시면 감사히 놀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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