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님, 질문 있습니다
사유하는 당신에게
Chat GPT.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입니다.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단지 이세돌이 사람이라는 이유로 열렬히 응원했던 제가 30분 정도 구글링해서 알아낸 정보로 전문가인 척 Chat GPT의 작동원리를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하도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Chat GPT가 난리길래 짧은 사용기를 남겨보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인공지능 서비스는 익숙합니다. 각자 핸드폰에는 시리와 빅스비가 들어있고 얼마 전에는 다소 논란이 일었지만 이루다라는 정말 어디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인공지능 채팅 서비스까지 등장했습니다. 딱히 알고 싶진 않았지만 이루다는 AI 주제에 인스타 팔로워가 10만에 육박하더라고요. 어딘가 좀 이상했지만 시대가 그렇게 변한 걸 어떡하겠습니까. 받아들어야죠. 다시 Chat GPT로 돌아오면, 이 친구도 위 서비스들과 비슷합니다만 약간 달랐습니다. 단순 대화뿐만 아니라 대학 과제로 쓸만한 글쓰기를 단 30초 만에 완성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글쓰기는 꽤 중요합니다. 말하기와 더불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로, 글을 쓰기 위해선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생각만으로 부족하다면 다양한 자료조사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선 사고력이 발전하게 됩니다. 업무와 학업, 나아가 인간관계까지 모든 영역에서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죠. 아무리 미디어, 영상 시대라지만 아직도 주류 사회와 업계의 기본 바탕은 글쓰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Chat GPT의 등장으로 모든 게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이 엄청난 인공지능은 인터넷 바닷속 가라앉은 정보들까지 몽땅 긁어모아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약간은 투박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한, 육하원칙과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갖춘 에세이와 보고서가 단 30초 만에 만들어집니다. 2년간 에브리타임에서 꿀강을 찾아 듣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단순 보고서와 에세이를 최종 과제물로 제출하는 수업은 앞으로 수강신청이 더 험난해질 거라 예상합니다. 몇백 년의 역사를 가진 대학의 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될 판이니 당장 이번 주에 개강인 우리나라 대학교들의 대책이 궁금해지는군요.
그렇다고 해서 Chat GPT가 만능이란 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글을 얻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질문을 Chat GPT에게 해야 합니다. 단순히 '웹 크롤링 하는 법 좀 알려줘'로 질문했을 때와 '파이썬으로 S&P 500에 해당하는 매출액 상위 기업 10개의 1분기 순이익을 크롤링 해 엑셀로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줘'와 같이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도 피해야 합니다. 예상되는 답변과는 다른 관점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독특한 질문을 해야 Chat GPT도 그에 걸맞은 답변을 하기 때문이죠. 아마 미래에는 글쓰기 능력보다 어떻게 질문하는지에 관한 능력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 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기술의 발전마다 누구는 독창성을, 누구는 사고력을, 누구는 융합성을 기르라고 합니다. 오늘의 유행이 내일의 구식이 되는 사회에서 어떤 능력이 중요해질진 모르겠지만 그냥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게 조금은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아무리 Chat GPT가 나의 과제를 대신해 준다고 해도 과제를 하며 생각한 머릿속의 사고들을 그대로 가져오긴 힘들 겁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 AI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미묘한 차이와 시선을 발견할 수 있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어가 틈을 벌려 사고의 흐름을 넓히는 과정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 시대가 약간 무섭습니다. 생각할 기회가 점점 없어져가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둔 한국 사회의 폐해인지, 그냥 전 세계의 문제인진 모르겠지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풍조가 서서히 사회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신문 기고와 칼럼은 이제 지하철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고 조금만 긴 글을 써도 댓글에는 3줄 요약이 달립니다. 깊이 읽고 사고하는 걸 낭비라 여기며 누가 정리해 준 요약본을 슬쩍 읽고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선택을 생각 없이 해버립니다. 소비자들이 긴 글과 영상은 안 보니 유튜브도 쇼츠라는 짧은 영상 위주의 플랫폼을 따로 만들 만큼 정보 제공의 주체들도 이에 맞춰 갈 수밖에 없습니다.
쇼츠와 릴스를 보지 말란 말은 못 하겠습니다. 저 역시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면 내가 뭘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릴스를 무의식적으로 넘기며 낄낄대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말해 재밌습니다. 예상치 못한 영상과 웃음 포인트, 유행하는 음악과 멋있는 춤까지 이 모든 걸 30초 안에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종합문화예술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는 못할 거 같습니다. 다만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다른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야겠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과 영상들이 그렇게 재미없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현생이 너무 바빠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요? 핑계 대지 말라고 혼쭐내고 싶지만 이해합니다. 알바와 학교, 이제 막 입사한 회사에서 위아래로 바쁘게 치이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진짜 없긴 합니다. 그렇다면 그냥 평소에 무엇이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걸 추천합니다. 단순 엑셀 작업을 할 때도 왜 엑셀을 초록색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일을 하면 중간중간 숫자를 잘못 입력할 때도 있지만 생각하는 과정에서 뭔가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뇌를 비우고 살고 싶지만 그러다가 언젠가는 미래 인공지능 키오스크에게조차 무시당할 것 같아 이렇게라도 훈련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재미 삼아 Chat GPT를 사용해 보길 추천합니다. 간단한 회원가입만 거치면 이번 학기 대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아, 그리고 미처 말씀 못 드린 게 있는데 위 글의 1/3 정도는 Chat GPT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