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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Mar 20. 2023

질퍽한 눈

일상이 지루한 당신에게

눈. 구름 안의 물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 결정화된 것. 1cm도 안되는 작은 눈들이 쌓여 흑갈색의 나무들을 하얗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눈을 좋아하고 싫어합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매일 지나가는 거리와 풍경을 여행을 온 듯 바꿔 주거든요. 그중에서도 수분을 가득 머금어 밟으면 뽀드득 소리를 내고 발자국 모양이 그대로 남아 까먹고 있었던 내 신발 밑창이 어떤 모양인지 알려주는 눈을 가장 좋아합니다. 또 이런 눈은 잘 뭉쳐져 가지고 놀기도 좋습니다. 이제는 집안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오리 눈사람 집게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 이쁜 오리들을 만드는 걸 보면 괜스레 내 맘도 편해집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영원할 순 없습니다. 누군가의 낭만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교통정체의 주범으로, 누군가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치워야 되는 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저마다의 주관과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누가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삶을 바라보는지의 차이로 인해 서로 간의 간격이 벌어지고 생각이 달라집니다. 눈이 오면 항상 밖에 나가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놀았던 어린이들은 눈이 오는 날을 행복으로, 눈이 오면 자고 있던 침대에서 불려나가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쌓이는 하얀 쓰레기들을 치우는 군인들은 눈이 오는 날을 불행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지금 현재 상황에 근거해 판단을 내립니다. 이건 좋은 것, 이건 나쁜 것. 이건 필요한 것, 이건 쓸모없는 것. 이건 나인 것, 이건 내가 아닌 것 등등 말이죠. 적지 않은 시간을 아등바등거리며 살아왔기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 사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성인이 되고 술에 대한 흥미가 어느정도 떨어질 때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서서히 알게 됩니다. 책임감도 커지기 때문에 섣불리 내가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시도할 만한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학생과 달리 지금부터 내가 벌이는 일들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죠. 또한 바쁘게 흘러가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비효율적입니다. 당신이 호기심이 생겨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일에 기웃기웃거리고 있으면 괜스레 당신의 경쟁자가 앞으로 치고 달려 나가는 불안감이 듭니다.


그래도 단 한 번쯤은 나 자신한테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줘보는 것이 어떨까요? 내가 계획했던 예상 경로를 잠깐 벗어나 모르는 역에 내려보기도 하고 환승시간에 쫓겨 급하게 달려가다 코끝을 스치는 델리만쥬의 냄새에 이끌려 예상치 못한 행복을 가져보기도 하는. 그런 삶을 잠깐이라도 살아보면 어떨까요? 혹시 모릅니까? 경쟁자가 날 앞질러 가면 악에 받쳐 쫓아가기보다 뒤에서 땀방울이 맺힌 채 열심히 달려가는 경쟁자의 사진을 멋지게 찍어 유명한 사진작가가 될지도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가 경험했던,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한 발자국씩 벗어나 봅시다. 뽀드득거리는 눈 말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아니라 다른 눈도 각자의 개성을 찾아 새롭게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염화칼슘이 섞여 반쯤 녹은 질퍽한 눈은 뽀드득거리는 눈과 달리 밟았을 때 샤베트마냥 사르륵 녹는 그 촉감이 예술입니다. 이번 겨울 동안 집 밖에 나설 일이 있다면 도롯가 옆에 있는 질퍽한 눈을 꼭 밟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동안 그 촉감에 못 헤어 나와 도롯가 옆에서 슬라이딩을 하다 뒤에서 오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에 머쓱해 다시 인도로 올라가는 당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충분한 젊음입니다! 이왕 한번 태어난 거, 전 세계 195개 나라 중 109번째로 큰 나라에서 경험한 것들로만 인생을 채우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당신의 달란트는 당신이 생각한 것 그 이상입니다. 그런 좋은 달란트를 발견도 못해보고 꽁꽁 숨겨둔 채로 살아가는 건 국가적, 아니 전 세계적 손실 아닐까요? 생각도 많아지고 계획도 많아지는 1월입니다. 올해는 사소한 것이라도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것으로 채워보는 한 해가 되길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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