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소크라테스
고전과 윤리 수업 시간이었다. 통합사회, 생활과 윤리 시간도 좋지만, 고전과 윤리 시간은 진로선택 수업에다가 평가의 압박이 덜해 다양한 생각을 물을 수 있어서 더 좋다. 오늘도 지난 시간과 마찬가지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구절을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교과서 마지막에 ‘아크라시아’ 즉, 자제력 없음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이 올바른지 알아도 ‘아크라시아’ 때문에 그에 따라 행동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승님인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에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너희가 지금 중간고사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알지만 공부 안 하는건 자제력이 없어서 일까? 중간고사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걸 모르기 때문일까?” 이에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공감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공감했다.
“알긴 아는데, 너무 하기가 싫어요.”, “공부하다가도 자꾸 딴 생각이 나요.” 등등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의지력이 약해서 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현실적으로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이 올바른지 잘 이해하고 알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의 주장의 의미도 중요하다. 학생들의 예로 살펴보면, 학생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중간고사 성적을 잘 받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이 공부를 해야 하는 진짜 이유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정말로 배운다는 것, 무언가 알게 된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앎 혹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공부가 즐겁고 공부하는 시간이 기다려질 것이다.
주말이면 방송통신고 수업을 2주에 한번씩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6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다. 이 어르신 학생분들은 공부가 서툴고 어려움이 많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 하나는 누구 못지 않다.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앎이 있는 학생인 것이다.
스스로 또 한 번 생각해본다. 요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식단을 조절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를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내 건강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