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와 결과
3월 신학기가 시작하고 고전과 윤리에서 맨 처음 학생들과 읽은 고전은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의 구절이었다. 작년에는 교과서 순서대로 ‘격몽요결’을 읽었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의 관심이 낮은 것 같아 순서를 변경하여 읽었다. 칸트를 처음에 넣은 이유는 아무래도 수업에 집중도가 높은 3월에 칸트를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칸트의 글을 읽는 건 쉽지만은 않았다.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이해, 윤리학에 대한 배경지식 등이 없이 무작정 읽기에는 추상적인 논의를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딱 한 쪽, 딱 한 구절만 한 시간 동안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했다.
오늘 읽은 구절의 주된 내용은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만이 선하다는 내용이었다. 즉, 선한 의지에서 나온 행동만이 도덕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도는 선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행위(의무에 맞는 행위)는 칸트 입장에선 도덕적 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선한 의도는 없어. 근데 나한테 이익이 될 것 같아서 봉사활동을 하루에 3~4시간 씩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어?”
대부분 “당연히 도덕적이죠. 어쨋든 남을 도왔잖아요.”,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등의 대답이 나왔다. 일부 학생들은 “아니. 그럼 남을 해치려고 했는데, 결과만 좋으면 되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의도가 어떠하든, 그 과정이 어떠하든 나에게 이익이 되고 혹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요즘 너무 결과만을 바라보는 탓에 다른 것들을 오히려 무시하는 경향이 생긴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봉사시간을 많이 채우려고, 생기부에 좋은 멘트를 남기기 위해, 학생회 간부로써, 학급 일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다. 담임을 할 때 그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어찌되었든 우리 학급에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정말 착한 마음씨를 갖고 다른 친구들을 돕는 몇몇의 아이들을 보면 진짜 보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칸트가 이야기한 가치 있는 행위란 이런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