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와 육체노동은 무엇이 다를까?
지난 시간에 이어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의 한 구절을 읽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이 맞다고 느낀다. 맨 처음 읽었을 때는 한 문장도 제대로 읽기 어려웠던 칸트가 2번, 3번째 읽을수록 괜시리 친숙하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오늘의 구절은 칸트의 정언명령의 정식 중 하나인 ‘인격주의’와 관련된 내용이다.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하라.” 이 구절은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이고, 그 존엄성을 언제나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는 구절이며, 우리 현대인의 그러한 인식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구절이다.
오늘은 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구절을 읽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적으로 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시간이 걸렸지만, 그 의미 자체는 우리 모두에게 상식이기에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절은 아니었다.
오늘 내가 던진 질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다루는 질문이다. “칸트는 모든 인격을 수단으로만 대해선 안 된다고 해. 그렇다면, 서로 동의를 했다면 수단으로 써도 될까? 예를 들면, 대리모 같은 사례를 들 수 있어. 부유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임신이 힘들거나 고통스러워. 대신 돈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어. 반대로 가난한 여성 중 건강하고 젊은 사람은 당장 돈이 급하고 10달간 임신을 충분히 해 줄 수 있어. 이 둘의 요구가 일치하고 서로 동의한다면, 돈을 지불하고 부유한 사람의 아이를 대신 임신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이 질문에 열띈 토론의 장이 열렸다. “둘 다 동의하는데 뭐가 문제에요?”, “서로 윈-윈 아니에요?”, “아니지, 10달간 애를 키우는데 이건 돈으로 계산이 안 되지.”, “돈을 많이 주잖아.” 등등 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의 생각은 상호 합의가 있었고,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다면 상관없다는 주장이 주를 이루었다.
칸트는 언제나 우리의 도덕적 상식에 맞는 주장을 했다. 내 몸을 돈을 벌기 위해 판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라고 느낀다. 대리모, 성매매, 장기매매 등과 같은 행위는 나 자신의 인격을 돈벌이 수단으로, 혹은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도덕법칙에 어긋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때, 어떤 한 학생이 정말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선생님. 그럼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돈을 받는 거도 내 몸을 파는 거 아니에요? 뭐가 다를까요?”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을 했고, 시간을 달라며 고민을 했었다.
내 몸을 판매하는 것과 내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대리모나 성매매의 경우 내 신체의 일부를 마치 상품처럼 판매하여 돈을 버는 것이라면, 노동의 경우는 나 자신이 직접 주체가 되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인격이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이 둘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인 것 같다. 대리모의 경우 내가 주체적으로 다른 사람의 아이를 1달 간 키우길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성매매의 경우도 마찬가지 내가 주체적으로 모르는 사람의 욕망을 해소시키길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돈벌이 수단이며, 욕망의 해소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항상 칸트를 하면 헷갈리고 어렵다. 단지 용어가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무엇이 올바른지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주기에 어려운 것 같다.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지만 오히려 내가 칸트의 생각을 조금씩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