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노트

두고 온 여름

성해나 작가 소설

by 행복맘


성해나 작가님의 소설책 <두고 온 여름>.

배우 박정민님이 한 유튜브(편집자K)에 출연해 추천해서 읽게 됐다.

인물들의 섬세하지만 여백이 있는 감정선. 홀린듯이 읽었다.

아마 모든 가정에서 겪었을 서툰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1.

투덜대면서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셔츠의 깃을 올려보기도 하고, 단추를 두개쯤 풀었다가 끝까지 채워보기도 했다.

갑자기 가족이 될 수 있을 리 없다고, 인색하게 거리를 벌리다가도 이런 순간이면, 차곡차곡 쌓아온 미움이 맥없이 허물어지고 마음이 부드럽게 기울었다.

언젠가는 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품기도 했다.

2.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가감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3.

아까의 소동은 잊은 것처럼 그저 유쾌했지요. 사진첩에는 그 찰나를 담은 사진이 꽂혀 있었습니다.

브이를 한 채 웃는 어머니와 그 옆에서 열없이 얼굴을 붉히는 새아버지. 무심코 보면 평화로운 한때를 담아놓은 것만 같습니다.

당시의 내막이나 속내는 잘 읽히지 않지요. 함께 살아가는 동안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4.

그녀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습니다. 제게 등을 진 채 어머니는 한참 울었습니다.

고여 있던 것을 흘려보내듯 잠잠히.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5.

배척과 질투는 이미 옅어질 대로 옅어졌고, 묵은 감정들이 사라진 자리에 희미한 부채감만 남아 있었다.

6. 작가 인터뷰

1) 사람이 유동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 변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요.

생 안에서 고투하고 화해하며 기하의 뾰족함은 그리움과 넉살로 바뀌고, 재하는 유년에 비해 조금 쓸쓸해졌죠.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일일이 설명하기보단 독자들이 그 변화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쓰고 싶었어요.


​2) 건강한 삶은,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요.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데, 나는 왜 끊임없이 누군가를 오해할까, 손해 보지 않을 선에서만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동안은 내가 최대치의 사랑을 주면 타인은 그 근사치의 사랑이라도 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욕심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어요.

넓고 깊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랑하고, 누군가를 넉넉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요.

2년 전, 소설 원작으로 기획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남들의 부러운 시선 속에 같이 살고는 있지만 이미 와해된 지 오래된 한 가족의 이야기.

그 가족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각자 행복한 독립을 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비록 세상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내게 왜 그 작품을 기획했냐고 물어본다면,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할 때 누군가도 진정으로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누군가가 가족일지라도.

이 책의 기하와 재하,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꼭 그 때 기획했던 드라마 속 가족들의 모습 같았다.

서로를 향한 비정과 다정이 어긋나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여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애써 솔직한 마음들을 덮는다.

자신을 비하하고 스스로 상처를 낸다.

책을 읽는 내내 연민과 공감,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작가는 '건강한 삶은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결국 나를 사랑해야 함을, 안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 변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다.

나의 긍정적인 모습이든 부정적인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삶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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