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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해지고 담담해지기

by 행복맘


"다음주에도 아이가 거꾸로 있으면 수술 날짜 잡아야 해요."


​이번 검진 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수술이라니...!


​당연히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출산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담 후 내내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태어나 '수술'이라는 것 자체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두려움이 몰려왔던 걸까.


​제왕절개는 내 인생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선택지였다.

그런데 설상가상 선택지가 아니라 수술 아니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뭐가 더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왕절개와 자연분만, 두 가지 상황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갑자기 듣게 된 수술 가능성 이야기는 나에겐 상당히 큰 일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에게 아이 자세를 바꿀 수 있는 운동 동작 같은게 있냐고도 물어봤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태어난 아이를 바로 보고 품에 안고 싶었는데...

그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들을 하니 눈물이 나도 모르게 핑 돌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상인 내게 남편은 일주일 동안 아이가 다시 자세를 바꿀 수도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행복이는 임신 후 초음파를 한 이래로 한번도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입체 초음파 때에도 잔뜩 기대하고 갔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1시간의 사투(?)끝에 급기야 초음파 비용을 환불까지 받았다.

아이의 정상 성장을 확인해야 하는 검사 때에도 좀처럼 보여줘야 할 곳을 보여주지 않아서 애도 많이 먹었다. 초음파 선생님이 배를 얼마나 세게 누르시던지..

초코우유도 먹어보고, 산책도 30분 이상은 기본이었다.


​그런 시간들까지 갑자기 머리속에서 스쳐지나가니,

아이가 혹시나 어디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부터 시작해, 온갖 잡생각과 심지어는 작은 원망까지 들었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든 생각은 "행복이가 편하게만 지내고 있으면 됐다"였다.


​그래, 엄마는 네가 얼굴을 안보여줘도 되고, 어떤 자세여도 좋아.

뱃속에서 너가 편한 자세로 있다가 건강하게 만나자.

엄마는 어떤 상황이든지 받아들일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도 좀 놀라웠지만.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당황했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내뜻대로 되지 않아서 서운한 감정이 들었던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저 물 흐르는대로, 순리대로 받아들이자.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중요한 것은 행복이를 건강하게 만나는 것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더이상 기분에 침몰되지 않았다.

다행히 남은 오후를 다시 또 잘 지낼 수 있었다.


​나의 이런 마음가짐도 행복이가 주는 선물인 것 같다.

모든 일에 조금 더 담대해지고, 담담해지기.


​그나저나 제왕절개를 하게 되면 예정일보다 보름정도 앞서 아이를 맞이하게 되는데..

큰일이다. 아직 이것저것 정리 안한 것들이 산더미인데..

수술하면 챙겨야 할 것들도 두 배인데...!! 빨리 준비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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