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보기 싫은 자신을 징하게 들여다보며
문상훈 작가의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또래의 글이기에 더욱 관심이 갔던 그의 산문인데, 이제야 읽었다.
크고 귀여운 몸집과는 다르게 그의 글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다.
수줍고 겸연쩍어 하는 본모습과 다르게 그의 글은 매우 솔직하고 신랄하다.
끊임없이 자기혐오에 빠지지만 그것을 직시한다.
괴로워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좀 더 알게 된다.
가끔 연민도 느끼고 스스로 위로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좀 좋아지기도 하면서.
그런 문상훈과 나는 닮은 점이 참 많다고 느꼈다.
그의 성장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1.
싫었던 기억들은 자꾸 지워버리고 사랑했던 기억만 뇌에 새겨 놓는 과정도 본능인가 보다.
어떤 기준으로 지우고 새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일상에서의 힘든 순간도 시간으로 숙성되면 언젠간 달콤해지겠지 정도를 위안으로 삼는다.
2.
나는 기분이 안 좋은 이유를 잠시 잊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끝까지 상기시키는 편이거든요. 나는 차라리 모르고 싶었던 적이 없어요. 모르는게 좋을 일이란 내게는 없습니다. 뒤에서 내 흉을 봤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내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어요. 알고 나면 속상할지라도 찝찝하게 속상하기보다는 개운하게 속상하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눈앞에 징그러운 것들도 최대한 좋은 시력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고 마저 쳐다볼지 말지 판단은 내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찾았어요. 그때는 한 번 안경을 쓰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3.
너무 자세히 보려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또 이런 생각이라도 안 하고 사는 건 더 바보 같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4.
네가 밉다고 할 때는 다섯을, 사랑한다고 할 때는 열을 세고 말하기로 한다. 말이 앞서고 글이 앞서서 솔직하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하기로 한다. 상대의 표현이 서툰 것을 보고 마음이 작다고 여기지 않는 사려가 있으면 좋겠다. 내 비유와 언어유희가 또 내 마음을 새치기 했다고 알려주기로 한다.
(...) 드는 생각과 기분을 다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그 앞에 조용히 두고 오는 법을 알아가기로 한다.
5.
몸 말고 마음도 감기에 자주 걸린다. 마음에 감기가 걸리면 나는 늘 새벽과, 술과, 관성 같이 담배를 찾게 된다. 아무래도 마음 안의 덩어리들을 뽑는 동안 긁힌 상처를 닦아내려면 몸을 해쳐야 하는 건가. 몸이 덜 아플 때가 많으니 자꾸 몸의 피를 빼서 마음에 수혈하게 된다. 내가 규정하는 나는 세포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생각에, 나를 챙기려고 눈을 자주 감는 편인가 한다.
6. 이슬아 작가의 추천의 글 중,
뭘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냐는 타박을 들으며 그는 지내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늘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꼴보기 싫은 자신을 징하게 들여다보며 청춘을 백 번쯤 되살아본 것 같고 그러다가 아주 독특한 자의식들을 발명해낸 듯 하다. 승화의 아이콘이 된 지금도 그는 알고 있다. 인생과 자기혐오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살아간다는 건 점점 더 미워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