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철학이 되다!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뉴스를 접하다 보면, 특정 사건에 연루되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인물들에 대해 그 주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바라보고 느꼈던 관찰의 이야기들을 종종 보거나 듣게 됩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냈고, 착하고 무던한 사람이었으며, 주변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한 적도 없었다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증언들입니다.
평소 별다른 이슈 없이 지내던 사람들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들은 살아오는 동안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충분히 살아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장자 철학자는 선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선함이란 도덕적 기준인 인의를 잘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본성에 자신을 맡기고 주체성을 지닌 채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조차도 내재된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가며, 타인의 기준이나 기대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쉰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삶은 나 혼자만의 생존이 아니라, 세상과 끊임없이 관계 맺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그 흐름속 분위기에 휩쓸려 중심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있으면서도 나의 자리를 잃지 않는 것! 아마도 살아간다는 것은 그 균형 위에 자신의 중심을 세워가는 일이 아닐까요?
오늘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입니다.
사노 요코 작가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읽고 난 뒤에도 깊은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삶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살아 있음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조용히 붙들어 주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태어나고 싶지 않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 지구에 도착한 그 아이는,사자가 나타나도 모기가 물어도 강아지가 핥거나 간지럽혀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어떤 냄새가 그를 유혹해도 모두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나타납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에서 두 마리의 강아지가 서로 싸우다 여자아이는 엉덩이를 물리고 맙니다. 아픔에 놀란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위로받고 치료받기 위해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엉덩이에 붙여진 작은 반창고 하나!
그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마음에 처음으로 미묘한 감정이 생겨납니다.
그 반창고는 아픔을 견디고, 위로받고, 사랑받는 삶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바로 태어나지 않았던 아이를 태어나고 싶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이후의 모든 일상이 더 이상 상관없음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상관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입니다.
아픔과 흔들림이 찾아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돌보아 줄 힘이 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지금, 나로서 온전히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진짜 나의 모습이란 누군가의 기대나 영향이 덧입혀진 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나의 삶일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적당한 거리는 쉽게 허물어지고, 관계는 밀착되어 어느새 간섭이 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감정과는 다른 표정을 하고, 나의 목소리가 아닌 언어로 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은 마치 세상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도 닮아 있습니다. 분명 이곳에 존재하지만, 감각되지 않는 나의 모습 말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감각하지 못한 채 표현하지도 않고, 오로지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가다 보면 마음은 서서히 병들고,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한 지점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연습, 말로 꺼내는 연습, 혼자서도 서 있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연습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리고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알아차림입니다. 그 알아차림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숨 쉬게 하며,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마음에 ‘태어나고 싶다’는 울림이 스며든 것은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버겁게 느껴진다 해도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며, 때로는 말없이 기대어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면.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힘을 모아 결코 쉽지 않은 이 세상 속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한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태어난 아이는 걸어오는 여자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칩니다.
내 반창고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