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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옥 Jan 30. 2023

[옥춘당]

그림책이 삶의철학이 되다!

결혼식 장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이란 주례사를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부부의 연을 맺으면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좋든 싫든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인 줄로만 알고 사셨던 부모님 세대가 있었는데 요즘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내 마음이 끌리는대로 함께 맺음과 끊음이 어느순간 "참 쉽죠잉~"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모든것들이 쉬워지니 자녀 조차도 아픈부모를 모시고 사는 분위기가 아닌 요양원으로! 각자 나름의 사정들이 있지만 그러고 보니 미우나 고우나 "내 옆에 내 짝꿍이 있어야 그나마 존재감 있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즘입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다양성 만화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인 고정순 작가의 옥춘당속의 주인공들을 만나다 보면 부부에 관해 많은 생각이 듭니다. 만화의 형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던 고정순작가의 옥춘당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전쟁고아였던 고자동씨와 김순임씨는 기차역이 있는 작은 도시에서 삼남매를 낳았습니다. 

그 중 장남이 고정순 작가의 아버지 입니다. 


작가인 손녀는 늘 다정했던 두 분을 바라보며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매번 싸우기 바빴는데 어쩜 저리들 다정하신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낯을 많이 가리는 사회성 없는 할머니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남편이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기차역 주변에는 작은 술집이 즐비해 있었는데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술집 나가는 여자들에게는 집을 빌려주는 이가 없었고, 그들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할아버지 집이 유일한 곳이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동네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들과 골목길을 쓸고, 쓰레기를 치우셨습니다. 전쟁고아였던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돌아갈 집이 없는 걸 가장 두려워하셨습니다.


언젠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직함을. <언어의 온도 중에서>


할아버지는 그들의 집없는 두려움을 누구보다도 맘 깊이 알고 계셨던 분이였습니다. 

두려움속에 느낄 수 있는 그녀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할아버지셨기에 주변의 성화에도 그녀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셨던 것은 아니셨을까요?


제삿날 마다 할아버지께서 입에 넣어주셨던 사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옥춘당"

김순임씨가 천천히 녹여 먹던 사탕, 제사상에서 가장 예뻤던 사탕, 입안가득 향기가 퍼지는 사탕이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날들이 오래 가길 바랬는데 할아버지는 폐암말기셨고, 얼마남지 않은 시간 병원에서 보내기 싫다며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마다 한뼘씩 줄어드는 몸과 웃음이 사라진 할아버지의 모습...폐암선고 6개월 후 할아버지는 하늘로 멀리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말을 잃었습니다.할머니는 시간이 멈춘 집에서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치매환자로...


할머니를 간호하던 가족들은 점점 지쳐갔고, 결국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가끔 할머니를 찾아갔지만, 점점 요양원을 찾는 횟수는 줄어듭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양원 사람들 말로는 할머니는 종일 동그라미를 그리며 보낸다고 했습니다. 

동그라미... 무엇을 그토록 그리워 했던 것일까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잊을 수 없던 달콤하고 향기로웠던 시간... 옥춘당을 입에 넣었던 그 때가 아니였을까요?


할머니는 10년간의 요양원 생활을 마치고, 220m실내화를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지 20년이 지난 해였습니다.





책 한권에  삶과 죽음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어려웠던 전쟁고아, 누구보다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깊이 이해했던 노부부, 함께 나누었던 달콤했던 추억과 이별, 홀로남겨진 상황에서 버티며 그리움을 안고 살아왔던 한 사람, 그리고 각자에서 다시 함께함으로!


참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에게 있어 진정한 아픔은 무엇이였을까? 나와 같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위로 할 수 있을까?

병에 걸려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때, 나는 치료를 위해 애쓸 것인가? 아니면 삶을 제대로 마무리 하기 위해 준비할 것인가? 

만약 내가 아닌 가족의 마직막 순간, 그가 원하는데로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나의 방식이 아닌...

마지막 순간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곳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요즘은 수동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의 눈높이만을 맞추다보면 진정 인연의 끈은 오래 유지 될 수 없을꺼란 생각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야 함에 때로는 각자 원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 마주볼 수 있을 때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써 평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건 바로 恕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논어<위령공23> 


때론 밉상이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나이들면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같은 내 옆의 배우자... 함께 여서 든든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내 곁을 지켜줄 나만의 사람, 있으신가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는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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