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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옥 Feb 06. 2023

[괴물들이 사는 나라]

그림책이 삶의철학이 되다!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쉽게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자녀를 키우는 일인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의 수업이 있던 시기엔 사춘기는 아이와 성인의 그 중간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시기이니 만큼 혼란스럽고, 부모와의 마찰은 당연한 변화라고 아주 쿨하게 아이들과 소통했던 그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자신감은 내 자녀의 사춘기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어디로 사라진것인지, 아이의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로 부딪치고, 갈등 속에서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하는 제 모습을 느끼면서 자녀로 인한 많은 감정들을 몸소 직접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오로지 친구만을 바라보며 본인의 생활이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전혀 의식하지 않음이 불안하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하다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을 마주하며 다시금 마음의 중심을 잡아보고자 애를 쓰는 중입니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땐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함인지 크게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던 어느날 아이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감정의 최고점을 찍고 있었을 때 우연히 다시 펼쳐 보게 되었던 그림책은 가슴한켠 툭 건드려 주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늑대옷을 입고 장난치는 맥스...  과격한 장난을 서슴없이 합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장난이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이상하다 생각지 않는 듯 보여집니다. 


참고 있던 엄마가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이 괴물 딱지 같은 녀석

이에 맞서 맥스도 소리칩니다.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버릴꺼야!


화가난 엄마는 저녁밥도 굶긴채 맥스를 방에 가둬버립니다. 


맥스는 자신만의 세상속에서 향해를 시작합니다. 한달, 두달, 석달.... 꼬박 일년의 항해끝에 괴물나라에 도착합니다 


맥스를 처음 마주한 괴물들은 맥스를 향해 무서움을 드러냈지만, 어느순간 맥스는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괴물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 괴물 소동을 벌이자!


한참을 괴물들과 소동을 벌이면서 놀던 맥스는 마음한켠 쓸쓸함을 느낍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 때 저 멀리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옵니다. 이제 맥스는 괴물나라의 왕을 그만두기로 맘 먹습니다. 


괴물들의 무서운 표정과 협박에도 맥스는 다시 일년을 거슬러 올라 석달, 두달, 한달, 하루를 거슬러 오르며 항해를 합니다. 


그날 밤 맥스는 다시 제 방으로 돌아옵니다.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던건 따뜻한 온기를 담은 저녁밥이였습니다. 




사춘기의 변화를 겪는 과정속에서 자녀와 부모는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듯 합니다. 

서로 그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 팽팽이 줄을 부여잡고 서로에게 절대 끌려다니지 않으려는 거센 몸부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태풍이 올때는 태풍과 싸워 이겨야겠다고 맞서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부모이지만, 소나무처럼 버티는 대신 때로는 풀처럼 눕는 지혜가 필요할 때 인것 같습니다.  아이에 맞서 싸우기보다 이 시기의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게 더 현명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누구에게나 조금은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고 싶은 마음들이 어느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생길때가 있습니다. 

참는 것이 다 능사는 아닐것입니다. 그냥 바람이 부는데로, 마음이 끌리는데로 가본 경험이 있는 자만이 다시 바로 잡음도 할 수 있을 것이란 걸 그림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충분히 느껴본 사람만이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라 알려주고 있는 듯... 오늘은 제게 그림책이 말을 들려줍니다.

자녀의 사춘기의 변화가 제맘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고는 있지만, 가만히 지켜보면서 스스로 느끼고 다시 안정된 모습으로 가족과 부모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기다려봐야겠습니다. 

이성적인 강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감성적으로 따뜻한 음식에 마음을 담아 엄마의 사랑이 고스란히 전달 되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까닭은 추한것이있기 때문이요, 선한 것을 알 수 있는 까닭은 선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를 이루며, 길고 짧음이 서로 형성되고, 높음과 낮음이 서로 기울며, 음과 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가 서로를 따른다. 이처럼 성인은 무위(無爲)로 일하며 말하지 않음으로써 가르친다.  노자<도덕경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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