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돈이면 우리 아파트 대출금 전부는 아니라도 꽤나 갚았을 것이다. 대출금의 앞자리 단위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커다란 목돈을 들고 제주도에 1년살이를 하러 왔다. 빚을 지고 온 건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빚이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추가로’로 빚을 지지 않고 1년간 한량 생활을 할 수 있는 제주살이의 총예산은 이미 정해졌고 매 순간 그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매달 고정적인 급여를 받던 평범한 직장인이 더 이상 통장에 찍히는 돈없이 매 순간 숨만 쉬어도 정확하게 빠져나가는 돈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어색했다. 있는 돈을 야금야금 써가며 닳아가는 돈의 숫자는 어쩐지 쫓기는 마음이 들게 한다. 분명 이 돈을 쓰러 왔으면서도 다시 채워 넣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육아휴직을 했지만 첫 몇 달간 나는 회사로부터 프리랜서처럼 일을 받아 해왔다. 오래 해온 일이기도 했거니와 기획 업무라서 충분히 재택이 가능했다. 처음엔 마냥 놀면 뭐하나 싶은 마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프리랜서 업무를 이어갔다. 회사 상사와의 깊은 인연도 있고 그리고 진심으로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짧은 시간대비 꽤나 유혹적인 보수가 좋았다. 와, 제주살이 하면서 일도 하다니. 그야말로 디지털 노마드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괜히 내가 트렌디해지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나보다 조직이 크고 시스템이 확실한 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낸 이후로는 업무적으로는 회사와 접촉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완벽하게 회사 일에서는 분리가 되어 그야말로 휴직을 즐겼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공부하고 있는 코인 시장에 집중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비와 여행비 일부를 가지고 투자를 한다. 나처럼 고정적으로 정확하게 들어오는 프리랜서 급여는 아니지만 수익 단타를 치며 적당한 수준으로 부업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부부 둘이서 몇 달간 부업을 하니 여행 예산비의 앞자리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남편은 행복해했고, 나는 남편에게 월급을 주는 기분이 들어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아이 케어를 하면서 쉬엄쉬엄 하던 내 일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난다고 해도 사실 이정도 일은 예전에 회사 다닐 때 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너무나 작은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아이와 여유롭게 저녁 일과를 즐겨야 하는 시간에 나는 왜 아이에게 티브이를 틀어주고 급하게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분명 아이가 학원을 가 있는 동안 산책을 하며 가볍게 걷는 오후가 돼야 하는데 왜 나는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이지? 이상했다.
나는 그토록 진저리 나는 이 짓을 딱 1년만 멈추기 위해 휴직을 한 건데 내가 이 짓을 또 반복하고 있다는 상황이 너무나 역설적이라 기분이 멍했다. “전보다는 적게 일하는데 왜 그래, 그 정도 일하고 이 정도 받는게 쉬운 일이냐, 너무 어리광 아니야?”라며 내면의 욕심쟁이가 소리친다. 그런가? 그렇지. 그래. 이렇게 편하게 일하는 게 어딨어. 그냥 하자는 마음으로 몇 달을 보냈다.
한번 연결된 일은 어떻게 이어져서 올지 모르니 핸드폰 카톡창을 수시로 확인하고, 혹시 모르니 외출할 땐 노트북을 꼭 챙겨 나갔다. 왠지 모르게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제주에 왔으니 새로운 것을 경험하자며 남편은 어느 날 호텔 저녁 뷔페를 예약했다. 인당 십만 원이 넘었다.최고 품질의 식재료로 만들어진 산해진미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반짝였다.맛있었다. 맛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십만 원어치를 먹지 못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또 어느 날은 초밥 오마카세를 갔다. 장인정신 가득한 셰프의 대접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지만, 역시나 그뿐이다. 행복하진 않았다. 내가 이 비싼 것들을 소비하기 위해 부업으로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정말 행복한 게 맞는 걸까. 처음으로 돈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미 이곳에서 소비할 1년의 예산은 준비됐다. 곤궁하게 지내지 않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예산이었다. 그럼에도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경험을 위한 소비의 고품질화를 위해 더 일해야 한다는 역설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진지하게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압박감 없는 느슨한 일상, 돈 걱정 없이 카페를 갈 수 있는 내 용돈,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시간의 소비. 내가 감사한 삶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비싼 걸 먹을 때, 비싼 호텔에 묶을 때, 비싼 경험을 했을 때가 아니라 자주 있는 작은 소비의 빈도였다.
내가 충만했던 순간은 제주 삼대 커피라는 유명한 ‘값비싼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오전에만 할인하는 1900원짜리 커피를 마시더라도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쓰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 순간들만 주어진다면 나는 진심으로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나에겐 돈의 소비가 아니라 시간의 소비가 더 가치롭게 느껴졌다. 내가 울적했던 이유는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2022년의 하루, 1시간이라도 나는 일로서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쓰기 위해 더 버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의 나에게 돈의 소비는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 우리는 아직 계획했던 예산을 벗어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매일을 자잘하게 소비하며 살아갈 오늘의 탕진액이 남아있다. 이런 삶 자체가 사치라면 이미 나는 한없이 사치스럽게 살고 있어 더는 돈을 벌 이유가 없는데, 왜 나는 나의 아까운 지금을 낭비하는 걸까. 이 고리타분한 말을 내가 할 줄을 몰랐는데, 돈은 내년에도 벌 수 있지만, 이 시간은 내년에는 없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회사에 문자를 보냈다.
“이사님, 제가 더 이상 프리랜서 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돈보다는 시간 부자가 되고 싶어서요. 배려에 감사드리며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보내고, 육아휴직을 낸 이후 처음으로 일에서 해방된 듯 온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여전히 나의 부업을 아쉬워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나는 오랜만에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며 내 시간을 ‘방탕하게’ 쓸 생각에 그날 발을 뻗고 편히 잠에 들었다. 일 년 동안 탕진하겠다고 결심한 건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있었는데, 이 당연한 걸 깨닫는데 몇 달이나 걸렸다.